선거로 뽑히지 않은 채 데탕트의 마지막 국면을 이끈 대통령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기차에서 워싱턴의 눈 치우기가 힘들다는 포드의 말에 브레즈네프가 '우리의 첫 거래는 죽 드리죠, 소련 제설차'라고 받았다.
하원의원 25년과 부통령을 거쳐 1974년 닉슨의 사임으로 대통령이 된 공화당 정치가로, 한 번도 선거로 뽑히지 않고 백악관에 오른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다. 닉슨이 연 데탕트를 계승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브레즈네프를 만나 SALT II의 틀, 운반수단 2,400기와 MIRV 1,320기의 상한을 잡았고, 이듬해 헬싱키 최종의정서에 서명하며 잭슨-배닉 수정조항을 법으로 만들었다. 닉슨에 대한 사면이 최대 논란이 되었고, 1976년 카터에게 패배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74–1977 정부·행정 · 미국 국가기관
경력 연표
- 1949–1973하원의원 (미시간 5선거구)
- 1965–1973하원 소수당 원내대표
- 1973–1974부통령
- 1974–1977제38대 미국 대통령
- 1974.11블라디보스토크 회담, 브레즈네프와 SALT II 기본 틀 합의
관련 역사 사건
블라디보스토크 정상회담과 SALT II의 틀 (1974)
포드는 1974년 11월 23~24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브레즈네프와 회담했다. 이 회담은 SALT I이 1977년 10월 만료를 앞둔 가운데 그보다 포괄적인 후속 협정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열렸는데, SALT I은 탄도미사일 수만 제한하고 중폭격기와 다탄두 재돌입체(MIRV)는 규제하지 않아 1974년 시점에는 미국에 유리한 상태였다. 회담에 앞서 1974년 10월 키신저의 모스크바 방문으로 SALT II의 일반적 틀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고, 포드 자신도 남은 쟁점은 발사기와 MIRV의 수, 그리고 양국에 동일한 쿼터를 줄지 여부뿐이라고 보았다.
양측은 하루 만에 각국 2,400기와 MIRV 1,320기의 동일 총량 한도를 합의했다. 미국 국무부가 정리한 양해각록에 따르면 여기에는 MIRV 탑재 체계 1,320기 동일 총량 한도, 신형 지상 ICBM 발사기 건설 금지, 신형 전략 공격무기 배치 제한, 검증 관련 조항을 포함한 잠정협정 요소의 계승이 담겼고, 새 협정의 존속 기간은 1985년까지로 명시되었다. 포드와 브레즈네프는 11월 24일 SALT II 문서에 서명했으며, 같은 해 12월 10일 도브리닌과 키신저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합의된 전략무기 제한의 세부를 담은 비밀 각서를 교환했다.
이 합의는 미완의 유산으로 남았다. 1975년 제네바 협상단이 이 틀을 바탕으로 작업을 재개했지만, 순항미사일 처리 방식과 소련의 신형 폭격기로 알려진 백파이어를 2,400기 총량에 포함할지를 둘러싼 근본적 이견이 드러났다. 1977년 새 행정부가 블라디보스토크 한도에 추가 감축과 질적 제한을 얹은 포괄 제안을 내놓았으나 소련은 블라디보스토크 양해와 어긋난다며 거부했고, 남은 차이는 이후 협상에서 절충되었다. 최종 SALT II 조약은 1979년 6월 18일 빈에서 서명되어 카터 대통령에 의해 상원에 회부되었으나, 1980년 1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심의가 연기되면서 비준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