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오른 두 번째 인간이자 군사우주체계 건설자
우주에서 첫 잠을 청하며 그는 교신했다. "팔과 다리만 잘 정리하면 우주 수면은 훌륭하다… 아기처럼 잤다."
소련의 우주비행사이자 군사우주 지휘관. 1961년 8월 6일 보스토크 2호를 타고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지구 궤도를 비행했으며, 17바퀴·25시간의 첫 장기 체류로 인간이 우주에서 먹고 자고 일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25세의 최연소 궤도비행사 기록은 오늘날까지 깨지지 않았다. 우주에서 최초로 수동 조종과 영화 촬영을 수행했으며, 최초로 우주멀미를 겪은 인물이기도 하다. 비행 후 스피랄 우주왕복선 계획의 조종사 훈련을 이끌었고, 1979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 국방부 우주수단총국(ГУКОС/УНКС)의 제1부국장으로서 군사우주체계 시험·개발을 총괄했다. 소련 해체 후 러시아 연방공산당 소속으로 국가두마 의원(1993~2000)을 지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57–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57스탈린그라드 군사항공학교 졸업, 전투기 조종사
- 1960제1차 우주비행사대 선발
- 1961.04보스토크 1호 백업 조종사 (유리 가가린)
- 1961.08보스토크 2호 탑승 — 17회 지구 궤도, 25시간 18분
- 1965–1968스피랄 우주왕복선 조종사 훈련대장
- 1968주콥스키 공군공학아카데미 졸업
- 1972참모본부 군사아카데미 졸업, 우주지휘통제 부대 부사령관
- 1973–1979ГУКОС 연구·개발 담당 부국장
- 1979–1991국방부 우주수단총국(УНКС) 제1부국장, 중장 → 상장
- 1993–2000러시아 국가두마 의원 (공산당)
관련 역사 사건
우주멀미와 보스토크 2호의 의학적 유산
보스토크 2호의 공식 임무 목표는 무중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연구, 수동 조종과 자세 제어 가능성 시험, 지표 관측과 촬영이었다. 비행 시간을 둘러싸고는 코롤료프와 의학진이 맞섰다. 우주비행사 훈련 책임자 카마닌과 우주 의학 책임자 야즈도프스키 등은 3바퀴 비행을 주장했는데, 그 근거 중 하나는 개 두 마리가 탄 위성 비행에서 6바퀴째에 경련이 나타난 사례였다. 그러나 궤도 8~13바퀴 구간의 귀환 지점은 태평양이었고 그 뒤에는 시베리아 오지가 나왔으므로, 남부 러시아 착륙이 다시 가능해지려면 발사 후 24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코롤료프는 하루 비행을 밀어붙였고, 국가위원회는 하루를 계획하되 3바퀴 후의 건강 상태를 보고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비행 중 티토프는 3바퀴째 점심을 사실상 거르고 블랙커런트 주스 한 튜브만 마셨다. 8시간이 지난 6바퀴째에도 식욕이 없어 파테 튜브를 억지로 짜 넣은 뒤에는 메스꺼움이 더 심해졌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구토 증세로 위생봉투를 사용해 아침·저녁 식사를 담아 사물함에 넣었다. 귀환 이튿날인 8월 8일 그는 설계자들에게 메스꺼움, 구토, 우울감, 방향 감각 상실,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움직일 때의 통증을 솔직히 보고했다. 이 증상은 훗날 우주 적응 증후군, 곧 '우주병'으로 불렸고, 우주비행사의 3분의 1에서 절반이 겪으며 3~6일이 지나면 적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탓에 개인의 특이 반응으로 해석되었고, 그 결과 티토프는 이후 비행 후보로 검토되지 않았다.
카마닌은 비행 후 몇 년 동안 티토프의 행동이 나빠져 규율과 알코올 문제가 생겼다고 기록했다. 1964년 6월 26일 밤 음주 상태로 차를 몰다 도로 위 장애물과 충돌해 동승한 여성이 숨졌고, 군 검찰은 불법행위가 없다며 불의의 사고로 처리했으나 당 차원의 엄중 경고와 직위 강등이 뒤따랐다. 카마닌은 1970년 7월 31일 일기에 9년 동안 10여 차례 중대한 규율 위반이 있었다고 적었다. 1968년 가가린이 훈련기 사고로 죽은 뒤 소련 정부는 두 번째 우주비행사마저 잃을 수 없다고 판단해 시험비행사로서의 그의 경력을 끝냈다. 다만 비행에서 얻은 자료는 우주비행사 훈련 프로그램을 크게 수정하는 근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