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레프 이바노비치 보키

Глеб Иванович Бокий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1879–1937 ✕ 처형

소련 신호정보의 아버지, 체카 스페츠오트델 창설자

경찰이 압수한 그의 수학 공책을 가리키며 "이게 암호라면 풀어 보시지"라고 조롱했다. 차르 비밀경찰은 끝내 해독하지 못했다.

구 러시아 제국 말기 지하혁명운동에서 암호 작성술을 익힌 올드 볼셰비키. 페트로그라드 체카 의장과 동부·투르케스탄 전선 특별부장을 거쳐 1921년 체카 산하 스페츠오트델(Спецотдел)을 직접 기획·창설하여 1937년까지 이끌며 소련의 통합 암호·도청·무선정보 체계를 구축했다. 국가기밀 보호, 외교공관 도청 및 암호 해독, 무선 펠렌게이션, 최초의 정부보안통신망을 한 부서 아래 통합한 공로로 소련 신호정보의 창시자로 평가된다. 한편 솔로프키 특수수용소(SLON)의 큐레이터로서 굴라그 체계 초기 형성에도 관여했으며, 밀교와 티베트 탐사에 경도된 이력이 후일 기소의 빌미가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스페츠오트델의 설계자: 부서 창설과 인재 영입

보키가 스페츠오트델을 세운 것은 행정적 사고가 아니라 국가 기밀 체계 전반을 다시 짜는 작업이었다. 1920년 8월 외교인민위원 게오르기 치체린은 레닌에게 급히 믿을 만한 암호 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썼다. 볼셰비키가 키를 자주 갈아도 쓰던 암호는 백군 측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1921년 4월 12일 소인민위원회 회의에서 보키는 각 부처의 암호 기관을 하나로 묶어 지도하는 특별부 창설안을 내놓았고, 5월 5일 결정으로 그가 그 부서장 겸 체카 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그는 혁명 전부터 암호 업무에 종사한 전문가들을 초빙했고, 1922~1923년 무렵에는 해독 전문 분석가들을 끌어들였다. 1933년 무렵 이 부서의 정원은 정식 100명에 비밀 정원 89명이었다. 기밀의 경계를 긋는 일도 그가 맡았다. 1923년 여름 비밀 취급자와 외국인의 접촉을 규제하는 회람을 돌렸고, 그해 12월 각 부처에 '비밀에 부쳐지는 서신 목록'을 보내 소련 최초의 비밀정보 분류 체계를 만들었다. 부서는 체카·오GPU 지도부가 아니라 당 중앙위원회에 직접 복종했기에 부처의 틀 밖에 서 있었고, 암호 해독과 무선 감청, 방향탐지, 외국 공관 감청을 아우르며 소련 신호정보의 뼈대가 되었다. 1937년 그가 사라진 뒤 이 부서는 폐지되어 1941년 2월까지 암호 업무는 군 정보기관에서만 다루어졌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