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9년 팔츠·바덴 봉기에 가담했다가 종신형을 받고 슈판다우에서 카를 슈르츠의 도움으로 탈옥한 본의 시인
1815년 오버카셀에서 태어나 신학을 공부했으나 미술사로 돌아서 1846년 본 대학 미술사 원외교수가 되었고, 시인으로도 이름을 얻었다. 1848년 아내 요한나, 제자 카를 슈르츠와 「본 신문」을 내며 본 민주협회를 세웠고, 1849년 2월 프로이센 하원의원에 뽑혔다. 1849년 5월 지크부르크 무기고 습격에 가담한 뒤 팔츠·바덴 봉기에 들어갔다가 무게슈투름에서 부상당해 붙잡혔고, 프로이센 군사 법정에서 종신형을 받아 혁명의 순교자가 되었다. 1850년 11월 슈르츠의 도움으로 슈판다우 감옥을 탈출해 런던으로 갔고, 망명파 사이에서 마르크스·엥겔스와 맞섰다. 1866년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 미술사 교수가 되어 1882년 그곳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요한 고트프리트 킨켈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46본 대학 미술사 원외교수
- 1848「본 신문」 편집, 본 민주협회 창립
- 1849프로이센 하원의원
- 1849팔츠·바덴 봉기 가담, 종신형
- 1850슈판다우 탈옥, 런던 망명
- 1866–1882취리히 연방 공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