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뮌의 예술가 연맹을 이끌고 방돔 원주 철거의 책임을 지고 스위스로 망명한 사실주의 화가
쥐라 지방 오르낭의 부농 가정에서 태어나 「오르낭의 매장」과 「돌 깨는 사람들」로 사실주의를 열었고, 프루동과 가까웠다. 1870년 레지옹 도뇌르를 거절했다. 1871년 코뮌의 예술가 연맹 의장으로 미술관의 자치와 검열 폐지를 요구했고, 6구 보궐선거에서 코뮌 의원이 되어 공안위원회에 반대한 소수파에 섰다. 방돔 원주를 옮기자고 제안한 일 때문에 피의 주간 뒤 6개월 금고를 선고받았고, 1873년 원주 재건 비용을 물라는 판결이 나자 스위스로 망명해 라투르드페이에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