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키 아호넨

Heiki Ahonen

소련 수용소에서 살아나와 발트 독립운동의 첫 공개 집회를 공동 주최한 에스토니아의 전 정치범

히르베파르크 집회가 「의사 표현의 길을 열어젖혔다」고 아호넨은 말했고, 이 역사적 전환을 「쇄빙선 효과」라 불렀다.

헤이키 아호넨은 1956년 에스토니아 페르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NKVD에 처형되고 아버지는 수용소에 갇혔으며 어머니는 시베리아로 추방되어, 가족 중 억압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1977년 지하 저항운동에 가담해 사미즈다트를 유통하고 서방 기자들에게 소련의 인권 탄압을 알렸으며, 1983년 반소 선동 혐의로 체포되어 페름 수용소에서 5년을 복역했다. 1987년 초 석방된 그는 8월 탈린 히르베파르크에서 비밀의정서 공개를 요구하는 최초의 공개 대중집회를 공동 조직해 발트 독립운동의 물꼬를 텄고, 이듬해 KGB에 의해 강제 추방되어 10년간 망명 생활을 한 뒤 귀환해 점령박물관 초대 관장을 지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히르베파르크 집회와 망명

1987년 8월 15일 헤이키 아호넨은 티이트 마디손, 라글레 파레크, 마티 키이렌드 등과 함께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공개를 위한 에스토니아 그룹(MRP-AEG)을 창립했다. 이 단체는 조약과 비밀의정서 공개를 요구하는 집회를 준비했고, 아호넨은 8월 23일 탈린 히르베파르크 집회의 주요 조직자이자 연사로 참여했다. 집회는 조약 체결 48주년에 열렸다. 참가자들은 처음에는 시청 광장에 모인 뒤 공원으로 행진했고, 수천 명의 청중 앞에서 비밀의정서와 그 결과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았다. 당시 독립적 정치 집회가 드물었던 소련 에스토니아에서 이는 공개적인 정치적 요구를 내건 대중 집회였다. 집회는 조약의 비밀의정서 공개뿐 아니라 그 결과의 시정도 요구했다.

1988년 아호넨은 군사 재훈련 불참을 이유로 다시 체포된 뒤 스웨덴으로 보내졌다. 1988~1989년 그곳에서 에스토니아 투옥된 자유투사 지원센터 부의장을 맡았다. 이후 1989~1998년 뮌헨과 프라하에서 라디오 자유유럽 에스토니아어 편집부의 편집자와 책임자로 일했다. 그는 1998년 에스토니아로 돌아왔다. 2003~2012년에는 키슬러-리초 재단이 설립한 점령박물관의 초대 관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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