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힘러

Heinrich Himmler

나치 인종국가의 핵심 설계자

1943년 10월 포젠에서 그는 친위대 장교들에게, 시체 백 구에서 천 구를 견디며 '품위 있는 자'로 남은 것이 '기록되지도, 기록될 수도 없는 영광의 장'이라고 말했다.

하인리히 힘러는 나치 독일의 친위대와 경찰 체계를 확장해 인종주의적 지배와 대량학살을 관료적으로 조직한 핵심 지도자였다. 그는 강제수용소와 절멸정책, 점령지의 학살 부대를 통솔하며 유대인과 여러 집단에 대한 집단살해를 실행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1944년 바르샤바 봉기 때에는 도시를 파괴하고 주민을 살해·추방하는 독일의 보복 작전을 승인하고 지시했다. 전쟁 말기 서방과의 독자적인 협상을 시도하다 히틀러에게 해임됐고, 영국군에 체포된 뒤 자살했다.

다른 이름: 하인리히 루이트폴트 힘러 · 하인리히 히믈러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민족정착 담당 제국판무관과 동부 재편성 계획

1939년 10월 7일 히틀러의 명령으로 힘러는 민족정착 담당 제국판무관(Reichskommissar für die Festigung deutschen Volkstums, RKF)에 임명되어, 해외의 독일계 주민(폴크스도이체)의 귀환과 정착, 그리고 독일 민족과 이질적인 주민의 '유해한 영향' 배제를 맡았다. 이 직무는 단순한 이주 행정이 아니라 점령지의 인구 구성을 인종 기준으로 다시 짜는 작업이었다.

판무관부는 동유럽 점령지의 '독일화'와 재정착을 위한 장기 계획인 제네랄플란 오스트에 깊이 관여해 그 초안 다섯 개 가운데 네 개를 작성했다. 이 계획은 발트 3국·폴란드·서부 우크라이나·벨라루스를 정복해 1천만 명의 독일인으로 재정착시키고, 그 지역의 기존 주민 약 3천1백만 명을 동쪽으로 추방하거나 굶기거나 강제노동에 동원한다는 내용이었다. 힘러는 이것이 20~30년이 걸릴 사업이며 비용은 670억 라이히스마르크에 이를 것이라고 보았다.

이 정책은 점령지에서 즉시 집행되었다. 자모시치 지역에서 독일 정착민 유입을 위해 폴란드 주민에 대한 대규모 추방 작전이 1942년 11월부터 1943년 3월까지 힘러의 직접 명령으로 수행되었다. 작전 기간에 297개 폴란드 마을이 비워졌고, 약 11만 6천 명이 강제 이주당했으며 그중 3만 명가량이 아동이었다. 독일 당국은 '인종적으로 가치 있다'고 판정한 아동을 가족과 분리해 독일식 이름을 붙이고 독일 가정에 입양시키는 방식으로 독일화하기도 했다. 이런 조치들은 전시의 정착·추방·독일화 정책이 학살과 별개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같은 인종 질서 기획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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