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만

Heinrich Mann
독립 활동 사회민주주의 독일 독일 1871–1950 ○ 망명지 미국에서 사망

『충복』으로 빌헬름 시대 독일을 풍자하고 망명지에서 독일 인민전선 결성을 이끈 작가

1871년 뤼베크의 곡물상 집안에서 태어난 독일 작가로, 토마스 만의 형이다. 빌헬름 시대 독일 시민계급의 굴종과 민족주의를 풍자한 『운라트 교수』(1905)와 『충복』(1918)으로 이름을 얻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 처음부터 맞섰다. 프로이센 예술원 문학 분과 위원장을 지냈고, 1932년과 1933년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의 공동 행동을 촉구하는 「긴급 호소」에 서명했다. 1933년 2월 독일을 떠났고, 예술원에서 쫓겨났으며 8월 국적을 박탈당했다. 5월 10일 분서에서는 “퇴폐와 도덕적 타락에 반대하여!”라는 구호와 함께 그의 저작이 불길에 던져졌다. 망명지 프랑스에서 독일 인민전선 준비위원회 의장을 맡았고, 1940년 미국으로 건너가 1950년 산타모니카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루이스 하인리히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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