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지몬

프랑크푸르트 의원 Heinrich Simon

1849년 「지몬-가게른 협약」으로 세습 황제안에 다수를 만들어 준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의 민주파 지도자

1805년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하고 1827년 프로이센 관직에 들어갔다. 1829년 결투 상대를 죽여 종신 요새 금고형을 받았으나 이듬해 사면되었다. 판사로 일하며 『프로이센 국법』(1844)과 사법 독립을 옹호하는 논쟁서를 썼고, 1845년 관직을 떠나 로베르트 블룸과 함께 언론인으로 일했다. 1848년 예비의회 서기와 50인 위원회 위원을 거쳐 마그데부르크 대표로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에 들어갔다. 베스트엔트할 분파를 이끌며 가게른과 협약을 맺어 세습 황제안에 다수를 만들어 주었다. 1849년 6월 슈투트가르트 잔부 의회의 섭정부 위원이 되었고, 패배 뒤 스위스로 달아나 궐석으로 종신형을 받았다. 1860년 발렌 호수에서 익사했다.

다른 이름: 아우구스트 하인리히 지몬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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