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네뮌데에서 고로도믈랴까지, R-7의 개념적 선조를 설계한 독일인 로켓 기술자
「낡은 보수적 V-2 형태를 버리면 2천 마일 사거리에 도달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원추형 형상이 근본적으로 유일한 해법입니다.」 1949년 아내 이르가르트에게
독일의 응용물리학자이자 로켓 유도 시스템 전문가. 페네뮌데에서 베르너 폰 브라운의 지휘 아래 V-2 유도 제어를 개발했고, 1944년 패전을 논했다는 이유로 게슈타포에 체포되기도 했다. 1946년 소련으로 강제 이주되어 고로도믈랴 섬에서 170여 명의 독일 기술자 집단을 이끌며 G-4(원추형 단일 단계)와 G-5(패킷 방식 다단)를 설계했다. 이 개념들은 훗날 코롤료프의 R-7 ICBM에 직접적 영향을 주었으며, 1949년 소련 평가단은 G-4가 R-3보다 우수하다고 판정했다. 1953년 서독 귀환 후 로켓을 떠나 스마트 카드를 발명하고 독일어 '인포르마틱' 용어를 만들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과학·기술 · 소련
경력 연표
- 1939–1945V-2 유도 제어 부서, 페네뮌데 육군 연구소
- 1945–1946뷰로 그뢰트루프 소장, 블라이헤로데 (소련 점령지구)
- 1946노르트하우젠 연구소 독일 측 책임자, 이후 중앙공장 총책임자
- 1946–1950NII-88 분소 1호 소장, 고로도믈랴 섬
- 1954–1958연구원, SEL (슈투트가르트)
- 1970–1980GAO 전무이사, 기제케 앤 데브리언트
관련 역사 사건
독일 기술진의 재건과 카푸스틴 야르 시험(1945–1949)
그뢰트루프는 1945년 9월 블라이헤로데에서 소련 점령 당국의 감독 아래 뷰로 그뢰트루프를 열었다. 그는 우수한 과학자들을 끌어들여 V-2 개발 문서를 복원하고 자이로스코프 기반 관성 항법 제어계를 개량하는 작업을 맡았으며, 쿠르트 마그누스와 요하네스 호흐, 베르너 알브링, 발데마르 볼프 등이 여기에 참여했다. 1946년 2월에는 노르트하우젠 연구소의 독일 측 책임자가 되었고, 5월에는 직원 5천 명 이상을 거느린 중앙공장의 총책임자로서 V-2 생산 재개와 베서팔 지대공 미사일 복원까지 맡았다. 이 작업은 코롤료프와 보리스 체르토크의 감독을 받았다.
그러나 1946년 10월 22일 밤 오소비아힘 작전으로 선별된 과학자·기술자가 가족과 함께 무장 강제 이주로 소련에 끌려갔고, 그뢰트루프는 포들리프키의 NII-88과 고로도믈랴 섬에서 170여 명의 독일 기술진을 이끌게 된다. 이주 뒤에도 실무 기여는 이어졌다. 1947년 10월부터 11월까지 카푸스틴 야르에서 독일에서 만든 5기와 소련에서 조립한 6기의 A4가 발사되었는데, 그뢰트루프와 마그누스, 호흐 등이 자이로스코프 제어 문제를 현장에서 해결한 뒤 다섯 기가 완전히 성공하고 두 기가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이어 독일 기술진은 대부분 소련제 재료로 만든 R-1의 개량안을 설계하고, 우스티노프의 요청에 따라 G-1, G-2, G-4 같은 후속 개념 연구를 진행했으나 어느 것도 설계 단계를 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