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우크라이나의 국가와 사회를 추적한 역사가
고향 마르키우카에 정착한 러시아 이주민 401가구 가운데 329가구가 1년 안에 돌아갔다는 자료를 들어, 그 정착이 오늘날 돈바스 분리주의의 뿌리라는 통설을 근거 없는 신화라고 반박했다.
헤나디 예피멘코는 20세기 전반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의 정치·사회사를 연구한 우크라이나 역사가다. 그는 홀로도모르 이후 농촌 재정착을 두 차례 파동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국가가 곡물 생산 기반을 회복하려 경제적으로 추진한 정책과 이주민의 대규모 귀환을 함께 밝혔다. 그의 연구는 인구 이동을 민족 구성의 단순한 변화로 과장하지 않고, 기근 뒤 농촌의 노동력과 국가 통치가 맞물린 문제로 설명한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89–1994루한스크 국립 교육기관 역사학부에서 수학
- 1993–1997마르키우카 중등학교 역사 교사
- 1997–2000우크라이나 역사연구소 대학원
- 2001「1932~1938년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연방공산당의 민족·문화 정책」으로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 2000–현재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 역사연구소 20~30년대 우크라이나사 부문 연구원
- 2013「기근 이후 시기 이주와 추방」에서 1933~1934년 재정착의 지역별 자료를 체계화
- 2014–현재역사 대중화 프로젝트 ‘리크베즈’ 참여
관련 역사 사건
1918~1920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의 지위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과의 관계 연구
예피멘코의 연구는 1930년대 문화·민족 정책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1917~1920년 우크라이나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УСРР)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РСФРР) 사이의 관계 및 그 국가적 지위의 변화를 별도의 주제로 다루었다. 박사학위 논문이 1932~1938년 전연방공산당(ВКП(б))의 민족·문화 정책을 다룬 데 이어, 그는 시야를 혁명과 내전기로 넓혔다.\n\n경제사 축의 첫 결실은 2008년 저서 『크렘린과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의 상호관계: 경제적 측면(1917~1919)』이었다. 이어 2012년에는 스타니슬라프 쿨치츠키의 책임 편집으로 『우크라이나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의 지위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과의 상호관계: 긴 1920년』을 냈다. 저자는 문서 자료에 근거해 1920년 한 해 동안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의 국가적 지위가 어떻게 진화했고 양 공화국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분석했다.\n\n그는 같은 문제를 공동 연구서에도 나누어 썼다. 2012년 『1917~1921년 우크라이나 혁명사 개설』에서는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의 성립(1917~1918)과 볼셰비키의 우크라이나 장악 시도, 곧 1918년 말에서 1919년 8월에 이르는 두 번째 시도를 맡아 서술했다. 2013년 공동 연구서에서는 1917~1938년 소비에트 체제 성립기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국가성의 진화를 정리했다.\n\n이 작업들은 소비에트 우크라이나를 단순한 모스크바 정책의 수용자로 보지 않고, 연방 구성 공화국의 권한과 지위를 둘러싼 협상과 분쟁의 장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그의 1930년대 연구와 이어진다. 그는 이를 국가성의 형성과 그 축소라는 장기 과정으로 파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