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C. 후버

Herbert Hoover

기근 구제의 거장이자 대공황으로 무너진 미국의 제31대 대통령

「이천만 명이 굶주리고 있다. 그들이 어떤 정치를 하든, 먹여야 한다!」 볼셰비키 구제를 두고 공격받자 후버가 남긴 응답이었다.

후버는 광산기사로 막대한 부를 이룬 뒤 두 차례 세계대전의 구호활동으로 명성을 쌓은 인물로, 1929년 미국 제31대 대통령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벨기에 구제위원회와 미국 식량청을 이끌며 수백만 명을 먹여 살렸고, 전후 미국구제청(ARA)을 사적 조직으로 개편해 동유럽과 러시아 구제를 주도했다. 1921년 볼가 기근에 맞서 고리키의 호소에 즉각 응답하고 리가 협정을 직접 주도해 식량 분배의 자율성과 소련의 금 보유분 지출을 관철, 하루 천만 명 이상을 먹였다. 대공황 속 대통령직에서는 고전했으나 은퇴 후에도 트루먼·아이젠하워 행정부의 개혁위원회를 이끌며 활동을 이어갔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리가 협정과 소련 구제의 조건(1921~1923)

리가 협정은 구호를 인도적 사업으로 규정하면서 동시에 정치적 조건을 명문화했다. 협정문은 후버와 미국 국민이 순전히 인도주의적 동기에서 러시아 인민을 돕고자 한다고 밝히고, ARA를 후버가 의장을 맡은 비공식 자원 봉사 미국 자선단체로 규정했다. 소련 당국은 ARA가 필요로 하는 인원을 들여보내도록 하고 그들에게 러시아 내 완전한 자유와 보호를 보장했으며, 식량 배분은 ARA가 임명한 인원에게 맡기고 소련 중앙·지방 당국에는 대표권만 두었다. 이는 기근의 규모 때문에 외부 원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소련 협상단이 대규모 외국인 존재를 경계하면서도 받아들인 조건이었다.

배분의 통제권은 협정의 핵심 쟁점이었다. 구호 식량은 ARA가 지정한 아동과 병자만을 위한 것이며 그들이 실제로 소비할 때까지 ARA의 재산으로 남고 ARA의 이름으로 배포되어야 했다. 소련 당국은 구호품이 일반 성인이나 육해군, 정부 고용인에게 가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보장하고, 오용된 구호품은 달러로 배상하거나 현물로 대체할 의무를 졌다. 반대로 ARA 배급을 받는 사람이 다른 주민에게 돌아가는 현지 배급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있었다. 운송과 비용의 분담도 규정되어, 소련 측은 페트로그라드·무르만스크·아르한겔스크·노보로시스크 등 항구에서 화물을 인수한 뒤의 하역·운송 비용과 내륙 기지의 창고, 연료, 사무실, 주거, 통신 수단, 의료 인력, 철도 차량을 부담하고 구호품 운송에 자체 구호품과 같은 우선권을 주었다. 후버가 처음 제안한 규모는 최대 백만 명의 아동을 먹이는 것이었으나, 실제 사업은 그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

이 협정은 식량을 무기로 삼지 않으면서도 구호가 소련 기관과 분리되어 운영되도록 요구한 문서였고, 훗날 다른 구호단체와 맺은 협정들의 원형이 되었다. 리가에서 시작된 이 협정의 이행 과정이 곧 후버가 소련 내부에서 벌인 외교의 실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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