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성개혁 연맹 서기를 지낸 열여덟 살의 성개혁가·사회주의 저술가
1932년 스페인 성개혁 연맹 서기가 되어 피임과 성교육을 알렸으나, 1933년 6월 그를 「미래의 여성」으로 길러 낸 어머니에게 살해되었다.
어머니 아우로라 로드리게스가 「미래 여성의 모범」으로 기르려고 낳은 신동. 두 살에 글을 읽었고 열여덟에 법학 학위를 받아 스페인 최연소 변호사가 되었다. 열네 살에 사회노동당과 노동총동맹에 들어가 사회주의 청년단 부의장까지 지냈으나, 1932년 당을 비판한 글로 쫓겨나 연방공화당으로 옮겼다. 해블록 엘리스·히르슈펠트 등과 편지를 주고받았고, 1932년 마라뇬이 이끈 스페인 성개혁 연맹의 서기가 되었다. 책 16권과 글 150편을 남겼다. 1933년 6월 9일 자신에게서 멀어지려는 딸을 어머니가 잠든 사이 총으로 쏘아 죽였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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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1932
이념·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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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1933
독립 활동대표
이념·선전 -
1932–
이념·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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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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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선전
관련 역사 사건
「붉은 처녀」의 성개혁과 죽음
페롤에서 어머니가 오직 아버지 노릇만 하도록 고른 군종 신부 알베르토 팔라스와의 사이에 잉태되어, 1914년 12월 9일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두 살에 읽고 세 살에 썼으며, 열여덟 살에 법학 학위를 우등으로 받아 스페인 최연소 변호사가 되었고 철학·문학과 의학을 함께 공부했다. 열네 살에 어머니처럼 사회노동당과 노동총동맹에 들어가 당원들 사이에 지지를 얻었고 사회주의 청년단 부의장을 지냈지만, 당 지도부는 그를 경계했다. 1932년 《라 리베르타드》에 반동적 후보와의 제휴를 비판하는 편지를 실었다가 쫓겨났고, 연방공화당에 들어가 「사회주의 벼슬아치들」을 공격했으며, 점차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아나키즘 쪽에 다가갔다.
그는 당대 스페인 성개혁 운동에서 가장 활발한 인물이었다. 해블록 엘리스(그를 「붉은 처녀」라 불렀다), 마그누스 히르슈펠트, 노먼 헤어, 요나탄 레운바크와 편지를 주고받았고, 1932년 그레고리오 마라뇬을 의장으로 한 스페인 성개혁 연맹이 세워지자 서기로 뽑혔다. 『피임 예방법』(1931)은 마드리드에서만 첫 주에 8000부가 팔렸고, 『우생학의 문제』, 『자식 수의 제한: 깨어 있는 프롤레타리아의 의무』, 『청년의 성적 반항』 등 책 16권과 글 150편 넘게 남겼다. 마드리드를 찾은 H. G. 웰스를 안내했고, 웰스는 그를 런던으로 데려가 비서로 삼으려 했다.
이 제안과 딸의 독립 시도는 어머니의 편집증을 키웠다. 어머니는 딸을 여성의 처지를 위해 낳았지 「사회주의자와 코뮌주의자들의 일」을 하라고 낳은 것이 아니라고 불평했고, 딸이 떠나려 할 때마다 자살하겠다고 위협했다. 1933년 6월 9일 밤 어머니는 잠든 딸의 머리에 세 발, 심장에 한 발을 쏘았다. 「조각가는 작품의 작은 흠을 발견하면 그것을 부순다」는 것이 어머니의 말이었다. 그의 삶은 소설과 연극, 영화 「나의 딸 일데가르트」(1977)와 「붉은 처녀」(2024)로 거듭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