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1944년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으로서 발트 유대인의 게토 수용과 재산 몰수를 명령한 나치 대관구장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농가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상을 입었다. 1923년 나치당에 들어가 1925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대관구장이 되었고, 1933년 이 주의 주지사를 겸했다. 1941년 7월 25일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에 임명되어 리가와 킬을 오갔고, 7월 27일 포고로 유대인 명부 작성, 노란 별 착용, 재산 몰수와 게토 수용을 명령했다. 리에파야의 유대인 처형을 막은 일로 해명을 요구받자 11월 15일 경제적 이해와 상관없이 모든 유대인을 없애라는 것인지 물었으나, 이후 3년 동안 자리를 지켰다. 1944년 8월 13일 허가 없이 오스트란트를 떠나 해임되었다. 1948년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나 1951년 건강 문제로 풀려났고 1964년 고향에서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41–1944 정부·행정 · 독일 국가기관
- 1925–1945 정치·당 지도 · 나치당·나치 정권
경력 연표
- 1923나치당 입당
- 1925슐레스비히홀슈타인 대관구장
- 1933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지사
- 1941–1944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
- 1948–1951징역 10년 선고, 1951년 석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