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의 압력 속에서 외교와 책임 사이에 선 정치가
1945년 6월, 그는 말리크에게 다가갔지만 소련은 회담을 늦추며 대일전 준비 시간을 벌었다.
히로타 고키는 일본 제국의 외교관 출신 정치가로, 국제협조를 표방하면서도 중국 침략과 군부의 대외정책에 제동을 걸지 못한 인물이다. 외무상과 총리를 거치며 군부대신 현역무관제를 되살리고 방공협정을 추진해 민간정부의 자율성을 약화시키는 데 관여했다. 1945년 6월에는 소련의 야코프 말리크 대사와 접촉해 전쟁 종결을 위한 중재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소련은 이미 대일 참전을 준비하며 회담을 지연시켰다. 도쿄 재판에서 전쟁범죄 유죄 판결을 받아 1948년 문관으로는 유일하게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그 책임과 형량은 지금도 논쟁적이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06외무성 입성, 외교관 시험 수석 합격
- 1923–1926외무성 유럽미주국장
- 1927–1930주네덜란드 공사
- 1930–1932주 소련 대사
- 1933–1936외무상, 사이토·오카다 내각
- 1936–1937내각총리대신, 외무상 겸임
- 1937–1938제1차 고노에 내각 외무상
- 1945말리크 대사와 접촉, 소련 중재 타진
관련 역사 사건
소련을 향한 중재 모색과 말리크 접촉(1945)
1945년 6월, 오키나와 전투의 패배가 임박했음을 인식한 일본 지도부는 소련을 통한 종전 중재를 모색했다. 일본 정부는 전 총리이자 외무상이었던 히로타에게 비공식 자격으로 소련 대사 야코프 말리크와 접촉하도록 위임했고, 히로타는 6월 7일부터 회담을 시작했다. 일련의 회담에서 그는 동맹이나 불가침 조약의 체결, 최소한 중립조약의 갱신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소련의 전쟁 연장 전략에 그대로 이용되었다. 몰로토프는 말리크에게 구체적 조건에 합의하지도, 협상을 중단하지도 말라고 지시했다. 일본이 중립조약 갱신을 위해 제시한 조건은 스탈린이 얄타에서 루스벨트와 처칠로부터 받아낸 서면 약속보다 후한 것이 아니었고, 말리크는 지시대로 일본 측 제안을 외교 우편으로 처리하며 협상을 느리게 진행했다. 소련은 이미 대일 참전 방침을 굳힌 상태였고 일본 측 조건도 명확하지 않아, 히로타는 도고 시게노리 외무상이 기대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 6월 29일 도쿄 소련 대사관에서의 세 번째 면담이 말리크와의 마지막 접촉이 되었으며, 7월 14일 재회담을 전화로 요청한 히로타를 말리크가 거절하면서 교섭은 끝났다. 이 협상이 중단된 뒤 소련은 대일 참전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