햘마르 프리돌프 실라스부오

Hjalmar Fridolf Siilasvuo
핀란드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핀란드 핀란드인 1892–1947 ○ 자연사

수오무살미에서 두 개 소련 사단을 모티 전술로 궤멸시킨 핀란드의 예거 중장

사단도 채 갖춰지기 전이었다: 실라스부오는 완편되지 않은 제9사단으로 소련 163사단을 연말까지 격파했고, 이어 라테 도로에서 44사단을 포위해 모티 더미로 만들었다.

헬싱키 출신의 예거 장교로,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로 건너가 프로이센 예거대대에서 훈련받고 핀란드 내전에서 백군 중대장으로 싸웠다. 겨울전쟁 당시 대령으로 제9사단을 지휘, 수오무살미와 라테 도로에서 소련 제163·제44 사단을 모티 전술로 포위·궤멸시켜 오울루를 향한 소련의 핀란드 분단 계획을 무너뜨렸다. 이 전공으로 소장에 오르고 베스트셀러 『수오무살미 전투』를 썼으나,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계속전쟁과 라플란드 전쟁에서 제3군단장으로 북부 전선과 독일군 축출을 지휘했으며, 1944년 만네르헤임 십자훈장을 받고 54세로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북부 핀란드 진격과 독일군 축출

1941년 6월 독일군 북부집단군 사령부에 배속된 실라스부오의 제3군단은 독일이 주도한 실버 폭스 작전의 남쪽 측면을 맡았다. 군단은 우흐타·케스텐가 선을 거쳐 루흐키 인근 무르만스크 철도에 도달하라는 임무를 받았고, 독일군 증원까지 받아 북쪽으로 진격했으나 루흐키를 점령하지 못했다. 1941년 10월 말 재개된 공격도 핀란드군 최고사령부가 정치적 이유를 들어 중단을 지시하자 실라스부오는 11월 17일 서면으로 공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전선은 이후 정체 상태에 들어갔고, 그는 1942년 중장으로 승진한 뒤 군사학교 감독관으로 전임했다.

1944년 3월 실라스부오는 카렐리야 지협 동부를 맡은 제3군단장으로 복귀했다. 7월 소련군의 비보르크-페트로자보츠크 공세에 밀려 부대는 부오크시강 방면으로 후퇴해 방어선을 구축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 전선을 지켰다. 모스크바 휴전협정 뒤 핀란드가 자국에 남은 독일군을 축출해야 하자, 실라스부오의 군단은 북부로 이동해 라플란드 전쟁에 참가한 핀란드군을 총괄 지휘했다. 핀란드군은 수개월에 걸쳐 독일군을 라플란드에서 밀어냈고, 마지막 독일군은 1945년 4월 27일 핀란드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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