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베트남의 초대 주중 대사이자 친중파 원로로, 1979년 중월전쟁 뒤 중국으로 망명한 정치국원 출신 정치가
응에안 성 출신의 혁명가로 호찌민과 함께 초기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했다. 1950~1957년 북베트남의 초대 주중 대사를 지내며 두 나라를 잇는 핵심 통로였고, 1956~1976년 정치국원, 1958~1979년 국회 부의장을 지냈다. 중소분열 때 북베트남이 잠시 중국 쪽으로 기운 1960년대 초 영향력이 정점에 이르렀으나,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밀려났다. 1979년 7월 동독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던 중 카라치에서 감시를 따돌리고 중국 영사관으로 피신해 베이징으로 갔고, 8월 기자회견에서 베트남의 화교 박해를 비난했다. 1991년 베이징에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