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련의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가, 1955년 「후펑 반혁명 집단」 사건으로 24년을 갇힌 시인
후베이 치춘의 두부 장수 집안에서 태어났고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공부하다 항일 활동으로 추방되었다. 1933년 상하이에서 좌익작가연맹 선전부장·서기가 되어 루쉰과 가까이 지냈고, 항일전쟁기 잡지 《7월》과 《희망》으로 「7월파」 시인들을 길렀다. 민족 형식과 문예의 정치 종속을 두고 저우양 등 당의 문예 지도자와 오래 맞섰다. 건국 뒤 제1기 전국인대 대표가 되었으나 1954년 정치국에 30만 자 의견서를 냈다가 1955년 5월 「반혁명 집단」의 우두머리로 체포되었고, 2,100여 명이 연루된 이 사건은 숙반 운동으로 이어졌다. 1965년 징역 14년, 1970년 무기징역을 받았다가 1979년 풀려났고, 1985년 숨진 뒤 1988년 완전히 복권되었다.
다른 이름: 호풍 · 장광런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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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1955
독립 활동대표
문학·예술 -
1954–1955
중화인민공화국 국가기관제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입법·국가 대표
경력 연표
- 1929일본 게이오대학 유학
- 1933일본에서 추방, 좌익작가연맹 선전부장·서기
- 1937잡지 《7월》 주편
- 1945잡지 《희망》 주편
- 1954정치국에 30만 자 의견서 제출, 제1기 전국인대 대표
- 1955「후펑 반혁명 집단」의 우두머리로 체포
- 1965징역 14년 선고
- 1970무기징역 선고
- 1979석방, 이듬해 부분 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