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을 세계사적 서사로 만든 역사가
스페인어 한마디 몰랐던 서른 살의 영국인이 쓴 《스페인 내전》이 파리에서 출간되어 프랑코 정권 아래 금서로 밀반입됐다.
휴 토머스는 1961년 저서 《스페인 내전》으로 전쟁을 국제 독자에게 널리 알린 영국 역사가다. 그는 외교 자료와 참전자들의 기록, 인터뷰를 바탕으로 공화파의 투쟁과 내부 폭력을 공산주의 진영이나 반공주의 진영의 논리 어느 한쪽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서술했다. 이 책은 프랑코 독재 아래의 스페인에서 clandestine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여러 차례 개정되었으며, 사실과 해석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출발점으로 남았다. 이후 그는 쿠바와 스페인 제국, 세계사를 연구했고 정치적으로는 노동당에서 보수당을 거쳐 자유민주당으로 옮겨 갔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31–1952윈저 출생, 셔본 스쿨과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 수학
- 1952–1953케임브리지 대학교 역사학 트라이포스에서 최우등, 케임브리지 유니언 회장
- 1954–1957영국 외무부 근무, 유엔 군축위원회 영국 대표단과 파리 대사관에서 활동
- 1957왕립육군사관학교 샌드허스트에서 강의, 첫 소설 《세계의 게임》 출간
- 1961《스페인 내전》 초판 출간, 1962년 서머싯 몸상 수상
- 1966–1976리딩 대학교 역사학 교수
- 1971–2014쿠바, 멕시코 정복, 스페인 제국을 다룬 대작과 세계사 저술
- 1981–2017스위너턴의 토머스 남작으로 귀족원 의원, 2017년 사망
관련 역사 사건
《스페인 내전》의 집필과 양측의 비판
토머스는 1957년 여름부터 1961년 봄까지 거의 4년 동안 이 책을 썼다. 스페인 기록보관소를 실제로 열람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 무렵 공개된 영국 외무부 문서와 제네바의 국제연맹 문서, 미국·독일·이탈리아 외교 사료의 인쇄본을 활용했고, 무엇보다 참전자들이 여러 언어로 남긴 저서들을 핵심 사료로 삼았다. 그는 내전의 여러 진영 인물 수십 명을 직접 만나 기록을 남겼으며, 후속 판본에서는 인터뷰한 스페인인 36명과 다른 국적자 49명의 명단을 실었다.
출간 직후 평가는 갈렸다. 마이클 풋은 이 책을 걸작이라 불렀고, 데일리 헤럴드는 저자가 공화파 지지자이면서도 학자로서 사실에 충실하다고 평했다. 반면 급진 좌파의 비판은 거셌다. 버넌 리처즈는 혁명적 노동자라는 주역이 사라졌다며 가장 냉소적인 내전 저서라고 혹평했고, 윌리엄 알렉산더와 허버트 사우스워스는 저자가 편을 들기를 거부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우파 진영에서도 피터 켐프는 진영을 가리지 않은 방대한 연구를 인정하면서도 프랑코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감춰지지는 않았다고 보았다.
전문 역사가들의 첫 평가도 엇갈렸다. 존 린치는 언론인과 선전가들이 친 연막을 걷어냈다고 높이 샀고, 레이먼드 카는 균형 잡힌 서술이라면서도 일화에 대한 선호가 전체상을 흐린다며 비중과 세부의 문제를 지적했다. 스탠리 페인은 세밀함과 정서적 거리두기를 인정하면서 기록보관소 연구의 부족과 조직·문체의 문제를 꼬집었다.
토머스는 이후 판본을 거듭 고쳤다. 1965년과 1977년, 2001년에 개정·증보되었고 2011년에는 50주년 기념 개정판이 나왔으며, 2012년 판본이 생전의 마지막 판본이 되었다. 이 책은 여러 차례 재출간되어 13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100만 부 넘게 팔린 것으로 전해진다. 프랑코 치하의 스페인에서는 출판되지 못했지만, 이후의 내전 연구가 계속 인용하는 출발점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