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에게 결별장을 보내고 NKVD에 살해된 소련의 불법공작원
“오늘 침묵하는 자는 스탈린의 공범이 된다.” — 1937년 7월 17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낸 결별서
본명 나탄 마르코비치 포레츠키. 오스트리아-헝가리령 갈리치아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1919년 폴란드 공산주의 운동에 합류했고, 이후 ‘루트비히’와 ‘이그나티 레이스’라는 이름으로 서유럽에서 소련 군사정보·국가보안기관의 불법공작망을 운영했다. 1928년 적기훈장을 받았으나 모스크바 재판과 대숙청을 겪으며 스탈린 체제와 결별했다. 1937년 7월 당 중앙위원회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훈장을 반납하고 제4인터내셔널 지지를 선언했다. 같은 해 9월 4일 로잔 근교에서 오랜 지인 게르트루트 실트바흐에게 유인된 뒤, 세르게이 시피겔글라스가 지휘한 NKVD 암살조의 총격으로 살해되었다.
경력 연표
- 1919폴란드 공산주의 노동자당 가입
- 1921–1937중·서유럽에서 코민테른·소련 군사정보·국가보안기관 불법공작 수행
- 1928정보 공작 공로로 적기훈장 수훈
- 1937.07스탈린 체제와 공개 결별, 훈장 반납과 제4인터내셔널 지지 선언
- 1937.09로잔 근교에서 NKVD 암살조에 피살
1937년: 스탈린과의 결별, 그리고 로잔의 총성
레이스는 16년 동안 유럽의 소련 비밀공작망에서 일한 베테랑이었다. 그러나 1936년 첫 모스크바 재판과 뒤이은 숙청은 그가 자신을 바쳐온 체제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만들었다. 1937년 모스크바 복귀 명령을 받은 그는 귀환이 곧 체포와 처형을 뜻한다고 판단해 잠적했다.
1937년 7월 17일 레이스는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결별서를 보냈다. 그는 침묵이 스탈린의 공범이 되는 길이라고 선언하고, 1928년에 받은 적기훈장을 편지와 함께 반납했다. 또한 ‘일국사회주의’와 인민전선 노선을 비판하며 레닌의 국제주의와 제4인터내셔널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망명이 아니라 현직 소련 정보장교가 자신의 이름과 정치적 입장을 공개한 이례적인 결별이었다.
NKVD는 즉시 그를 추적했다. 오랜 가족 친구이자 NKVD 협력자였던 게르트루트 실트바흐가 동조하는 척 접근해 9월 4일 레이스를 로잔 근교 샹블랑드로 유인했다. 대기하던 암살조가 그를 차량에 밀어 넣고 총격을 가했으며, 시신은 다음 날 도로변에서 발견되었다. 프랑스·스위스 경찰 수사는 차량과 호텔 기록, 관련자들의 이동을 통해 소련 해외공작망의 개입을 드러냈다. 레이스의 죽음은 발터 크리비츠키를 비롯한 다른 정보요원들에게도 스탈린 체제와 결별할 경우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를 보여준 사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