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야 그리고리예비치 스타리노프

Илья Григорьевич Старин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00–2000 ○ 자연사

소련 특수부대의 할아버지, 무선조종 지뢰와 철도 사보타주로 파르티잔전을 설계한 사보타주 기술자

1941년 11월 14일 새벽 3시 30분, 스타리노프는 보로네시에서 암호화된 무선 신호를 보냈다. 300km 떨어진 하리코프에서 독일군 사령부 건물이 R-10 지뢰와 함께 폭발해 게오르크 폰 브라운 장군이 매몰됐다.

일찍이 붉은 군대에 입대해 내전을 거친 뒤 철도부대 공병장교로 복무하며 기폭 기술을 독학했고, 1930년대 초부터 우크라이나 군관구에서 파르티잔·사보타주 교관으로 활동했다.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 제14파르티잔군단의 사보타주 작전을 조직했고, 대조국전쟁 시기에는 무선조종 지뢰 R-10으로 하리코프 독일군 사령부를 원격 폭파했으며 중앙유격대본부의 사보타주 담당으로서 '레일 전쟁'과 '콘체르트' 작전의 기술적 토대를 설계했다. 전후에도 KGB 교육기관에서 1987년까지 사보타주 전술을 가르친 '소련 특수부대의 할아버지'로, 그의 반열차 지뢰(PMS)와 훈련 체계는 베트남에서 라틴아메리카까지 20세기 비정규전의 유산이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로스토프 시기와 '원자 수첩'

1941년 12월 남부전선은 로스토프나도누 접근로에 지뢰·폭약 장애물을 설치하기 위한 특수 공병작전집단을 편성하고 스타리노프 대령에게 지휘를 맡겼다. 도시 방어에는 약 7만 개의 지뢰가 필요했고 그중 5만 6천 개는 시내에서 만들어야 했으며, 이를 위해 로스토프 국립대학의 실험 공방이 그에게 배속되었다. 우선 일정 시각에 스스로 폭발하는 지뢰와 제거 불가능한 지연작동 지뢰 등 새 형식의 지뢰가 개발되었고, 매달 최대 1만 5천 개의 지뢰가 공방에서 전선으로 실려 나가 진격하는 독일군에 큰 손실을 입혔다. 설치 작업에는 그와 함께 온 스페인 공화국군 출신 국제여단 병사들과 여성 공청단원, 징집 전 연령의 청소년들이 참여했다. 그는 로스토프에 특수대대를 창설했고, 그 파괴조들은 아조프해 얼음을 건너 독일군 후방으로 향하는 이른바 '얼음 원정'에 정기적으로 참여해 사령부를 파괴하고 노획 문서를 확보했다.

1942년 2월 23일 밤 그러한 원정에서 막심 레핀 상사의 지휘 아래 파괴조가 타간로크만 북안의 코사 크리바야(현 도네츠크주 세도보) 독일군 수비대를 습격해 수비대를 격파하고 포로와 노획 문서를 확보했다. 레핀이 함께 가져온 두꺼운 수첩은 독일어를 아는 로스토프 대학 교수들에게 판독되었고, 우라늄 핵변환 공식과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 정보가 담긴 '원자 수첩'으로 밝혀졌다. 스타리노프는 로스토프를 떠날 무렵 로디온 말리노프스키에게 수첩을 보여 주었고 그의 권고에 따라 국방위원회 과학 담당 특명전권위원 세르게이 카프타노프의 기구에 인계했으며, 화학박사 스테판 발레진이 이를 검토해 실제 판단임을 확인했다. 이 수첩은 1985년 카프타노프의 회고로 처음 공개되었는데, 그는 이 수첩이 물리학자 게오르기 플레로프의 경고와 함께 자신과 아브람 이오페가 국방위원회에 핵무기 연구센터의 긴급 설립을 건의하게 한 계기였다고 썼다. 1942년 9월 28일 스탈린이 우라늄 프로그램 재개 명령에 서명했고, 이 날짜가 소련 핵 개발 계획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수첩 획득 경위는 스타리노프가 1975년 1월 로스토프의 물리학자 이반 부일로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서술했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