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이 이스라일레비치 구레비치

Исай Израилевич Гуревич
소련 러시아계 1912–1992 ○ 자연사

원자로 설계를 가능하게 한 핵이론가

구레비치의 연구진은 뮤오늄 원자 속 양뮤온 스핀이 약한 자기장에서 두 개의 가까운 주파수로 세차해 맥놀이를 만든다는 새 현상을 예측하고, 1969년 실험으로 확인했다.

이사이 구레비치는 소련의 이론물리학자로, 핵분열과 중성자 물리를 연구했다. 1943년 실험 자원이 부족한 전시 상황에서 이사크 포메란추크와 함께 연구하여, 흑연 감속재 속 우라늄을 격자 형태로 배치하는 불균질 조립체 이론을 세웠다. 이 계산은 우라늄의 공명 흡수를 줄이는 설계 원리를 제시했고, 쿠르차토프 연구진이 F-1 원자로를 건설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리가 출신, 방사선연구소에서 원자력 프로젝트까지

구레비치는 1912년 7월 13일 리가에서 태어나 1934년 레닌그라드 대학을 졸업했고, 1932년부터 국립광학연구소에서 실험실 조수로 일했다. 1934년 레닌그라드 국립방사선연구소에 들어갔으며, 이 기관은 1938년 소련과학아카데미 방사선연구소가 되었고 그는 1944년부터 과학자문역을 맡았다. 1946년부터는 제2연구소에서 부문장을 맡으며 핵반응로 물리 연구를 이어갔고, 같은 해 모스크바 기계연구소 물리공학부 교수가 되었다. 1949년에는 원자로의 이론적 문제를 다룬 공로로 노동적기훈장을 받았고 스탈린상을 수상했다. 1952년부터 핵과 소립자 물리, 고에너지 물리, 약한 상호작용 연구로 관심을 넓혔으며, 1968년에는 소련과학아카데미 핵물리학부 통신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65년에는 L. V. 타라소프와 함께 쓴 『저에너지 중성자 물리』를 냈고, 1997년에는 416쪽 분량의 교재 『중성자 물리』가 출간되었다. 1992년 12월 6일 사망했고 모스크바 돈스코이 묘지에 안장되었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