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파예프의 후계자이자 스탈린에게 쓸모를 다한 내전 영웅
적군 최고 사령부가 서로를 비방하던 시절, 쿠탸코프는 디벤코의 만취와 무능을 고발했다. 답장은 NKVD였다. 디벤코의 사무실에서, 디벤코의 도움으로 체포되었다.
사마라의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7세부터 머슴살이로 일했다. 1917년 볼셰비키에 입당하여 차파예프 여단에 합류, 두 달 만에 정찰 소대장에서 연대장까지 올랐다. 차파예프 전사 후 25소총병사단을 이끌어 우랄 백코사크군을 격멸했고, 소비에트-폴란드 전쟁과 바스마치 토벌에서 적기훈장을 세 차례 수훈했다. 콤코르 계급과 소련 중앙집행위원회 위원까지 올랐으나, 1937년 상관 디벤코와의 상호 비방전 끝에 디벤코의 사무실에서 체포되어 1938년 7월 28일 처형되었다. 사후 소설 『차파예프』에서 그의 이름은 '옐란'으로 지워졌다.
경력 연표
- 1916–1917제1차 세계대전에 징집, 하급 부사관으로 복무.
- 1917.5볼셰비키 입당. 제2차 전러시아 농민대표 소비에트 대회 대의원.
- 1918붉은 군대 입대, 차파예프 여단 합류. 73여단장으로 승진.
- 1919차파예프 전사 후 25소총병사단장 취임. 우랄 코사크군 격멸. 명예혁명무기 수훈.
- 1920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서 25사단 지휘. 두 번째 적기훈장.
- 1923–1924군사아카데미 졸업. 호레즘 집단군 사령관으로 바스마치 토벌. 세 번째 적기훈장.
- 1928–1930제4소총병군단장.
- 1931–1935제2소총병군단장. 소련 및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 1935–1937콤코르 계급. 프리볼시스키 군관구 부사령관. 국방인민위원회 군사평의회 위원.
- 1937.5.15체포.
- 1938.7.28사형 판결, 당일 총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