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알렉산드로비치 말체프

Иван Александрович Мальце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898–1940 ○ 옥사

지역 보안기구를 지휘한 실무형 국가보안 관료

판결문은 그가 노보시비르스크 NKVD에서 ‘근거 없는 체포’와 수사자료 조작을 허용했다고 기록했다.

이반 말체프는 노동자 출신으로 혁명과 내전을 거쳐 국가보안기관의 지역 지휘관이 된 소련 관료였다. 그는 우랄과 시베리아, 북캅카스의 조직을 거치며 VChK·OGPU·NKVD가 지방 행정과 정치적 통제를 결합하는 과정을 대표했다. 1938년 노보시비르스크주 NKVD를 이끈 그는 특별 트로이카에 참여해 대테러의 집행 구조에 책임을 졌으며, 이후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복권되지 않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노보시비르스크 트로이카와 대테러

1937년 3월 31일 말체프는 서시베리아 변경주 NKVD 국장 보좌였고, 8월 15일 같은 기관의 부국장이 되었다. 10월 1일 노보시비르스크주가 설치되자 주 NKVD 부국장을 맡았다. 1938년 6월 11일부터 1939년 1월 28일까지는 주 NKVD 국장과 시베리아 군관구 NKVD 국가보안총국 특별부장을 겸임했다. 이 직책들은 지방 보안기관 지휘와 군관구 내부의 감시를 함께 맡겼다.

서시베리아 변경주 트로이카는 1937년 6월 28일 정치국 결정으로 설치되었고, 처음에는 NKVD 국장 세르게이 미로노프, 당 서기 로베르트 에이헤, 검사 이반 바르코프로 구성되었다. 말체프는 창설 때부터의 구성원이 아니라 이후 미로노프를 대체해 참여했으며, 회의록에는 1937년 8월부터 그의 서명이 나타난다. 10월 변경주가 폐지되고 노보시비르스크주가 만들어진 뒤에도 트로이카는 이름과 관할 변화 속에 업무를 이어갔다. 1938년에는 게오르기 고르바치, 말체프, 노보시비르스크주 당위원회 서기 이반 알렉세예프가 구성원으로 기록된다. 트로이카는 피고인을 출석시키지 않고 기소와 변호 절차 없이 판결했으며, 판결에 항소할 수 없었다. 역사가 세르게이 파프코프의 연구를 인용한 톰스크 NKVD 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1937년 서시베리아 변경주와 노보시비르스크주 트로이카는 42,725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26,772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 수치는 트로이카 전체의 실적이지 말체프 개인의 판결 수가 아니다.

말체프는 1939년 1월 25일 체포되었다. 1940년 5월 14일 소련 대법원 군사참의원은 러시아공화국 형법 제193조 17항 ‘а’호에 따라 그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그는 수감 중인 1940년 8월 코틀라스 이송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전기 자료들은 날짜를 8월 24일과 26일로 달리 적으며 사망 경위도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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