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키릴로비치 야코블레프

Иван Кириллович Яковле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18–2002 ○ 자연사

내부군을 기동타격대로 재편하고 체르노빌 방어선을 친 MVD 장군

1943년 말 키이우 서쪽에서, 야코블레프는 자신의 대전차포 대대와 두 개의 대전차소총 소대로 50대의 적 전차를 포위사격으로 맞아 17대를 격파하고 공세를 저지했다.

소련 내무부(MVD) 내부군 총사령관을 1968년부터 1986년까지 18년간 역임한 육군대장이다. 스타브로폴의 코사크 가정에서 태어나 1939년 붉은 군대에 입대, 위대한 조국전쟁에서 중위에서 소령까지 진급하며 여섯 개의 전투훈장을 받고 세 차례 부상당했다. 내부군 사령관으로서 영토 기반의 준군사 조직을 항공·해상 부대까지 갖춘 기동타격 부대로 재편하고 특수차량화경찰부대와 지역 사령부 체계를 도입했으며,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1만 5천 명의 병력을 동원해 오염 구역 경계 작전을 직접 지휘했다. 1986년 12월 우파 공항에서 내부군 호송연대 병사들이 여객기를 납치해 여러 명을 살해한 사건의 책임을 지고 해임되었으나, 말년까지 내부군 고문과 참전용사협의회에서 활동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차 장교에서 내부군 사령관까지: 전후 육군 지휘 경력(1945~1968)

야코블레프는 종전 후 1년간 포병 대대장을 지낸 뒤 참모 교육 과정으로 방향을 틀었다. 1949년 스탈린 기갑·기계화군사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주둔 소련 점령군 제37전차연대 부연대장을 거쳐 1950년 연대장이 되었다. 1952년부터는 사단 지휘부로 올라가 1954년 7월부터 1956년 11월까지 루마니아 브러일라에 주둔한 제25근위기계화 적기훈장 크리보이로크 사단을 지휘했다. 헝가리 사태와 수에즈 위기로 동유럽이 흔들리던 시기에 남서부 전략 방향의 야전 사단 하나를 맡고 있었던 셈이다. 1958년 참모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교육·훈련 행정으로 자리를 옮겨 국방부 군사교육국 부서장, 육군 주참모부 부서장, 육군 전투훈련본부 편제·교범국장을 차례로 역임했고, 1965년 12월 모스크바군관구 전투훈련 담당 부사령관이 되었다. 이 20여 년의 야전 지휘와 훈련 행정 경력은 그가 1968년 5월 기갑 중장 계급으로 내부군 총국장에 임명되는 배경이었다. 그는 스타브로폴 지방 체르놀레스카야 코사크 마을 출신으로, 7년제 학교와 프로흘라드니의 테레크 농업전문학교를 마치고 보로네시주 칸테미로프카구 국영농장에서 축산기사로 일하다 1939년 9월 징집되었다. 1940년 케메로보 박격포·포병학교를 졸업하고 123독립소총여단 81소총연대 소대장으로 소련-핀란드 전쟁에 나가 부상당했으며, 이 전쟁터 경험이 이후 전차·기계화 부대 지휘관으로 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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