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이그나티예비치 야쿠봅스키

Иван Игнатьевич Якубовский
소련 벨라루스 1912–1976 ○ 자연사 · 암

바르샤바조약군을 9년간 지휘한 벨라루스계 원수

1941년 모길료프 포위망 안에서, 야쿠봅스키의 전차대대는 시가로 진입하는 독일 오토바이 부대를 전차로 들이받아 분쇄했다.

벨라루스 농민 가정 출신으로 1932년 적군에 입대했다. 독소전쟁 내내 전차부대를 지휘하며 민스크·모길료프 방어전, 스탈린그라드, 쿠르스크, 키예프 해방, 베를린·프라하 공세까지 종전 직전까지 최전선에 서서 소련영웅 칭호를 두 번 받았다. 1967년 국방 제1차관 겸 바르샤바조약군 총사령관·소련원수에 올랐고,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지휘했으며 사망할 때까지 동유럽 군사동맹의 실무적 최고 지휘관으로 재임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다뉴브 작전

야쿠봅스키는 1967년 7월 바르샤바조약 연합군 총사령관에 취임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군사 작전을 맞이했다. 1968년 4월 말,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영토 내에서 바르샤바조약군의 훈련을 준비하기 위해 프라하를 방문했다. 이 방문은 알렉산데르 두브체크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개혁에 대해 소련 지도부가 군사적 선택지를 저울질하기 시작한 시점과 겹친다.

야쿠봅스키는 바르샤바조약군 총사령관으로서 「다뉴브 작전」의 군사적 준비를 실무적으로 총괄했다. 1968년 8월 20~21일 밤, 바르샤바조약 5개국(소련, 폴란드, 동독, 헝가리, 불가리아)의 병력 약 25만 명이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을 넘었다. 그러나 침공을 불과 며칠 앞두고 소련 지도부는 작전의 현장 지휘권을 야쿠봅스키에게서 육군 총사령관 이반 파블롭스키 대장에게로 넘겼다. 이는 바르샤바조약 연합군 사령부보다는 소련 국방부와 육군 참모본부가 작전 통제의 중심이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이었다.

야쿠봅스키는 침공 이후에도 1976년 사망할 때까지 바르샤바조약군 총사령관직을 유지하며 동유럽 군사동맹의 재편과 「정상화」 체제의 군사적 뒷받침을 주도했다. 1970년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영웅 훈장을 받았으나, 그가 지휘한 침공은 바르샤바조약의 집단적 군사 개입이 동맹국 주권을 유린한 결정적 사례로 역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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