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자주관리와 시민 연대를 잇은 반체제 사회주의자
1980년 파업이 시작되자 그는 노동자 조직과 자유로운 정보의 족쇄가 마침내 끊겼다고 선언했다.
야체크 쿠론은 폴란드의 사회주의적 이상을 당 관료제의 지배와 분리해 다시 사유한 역사가이자 조직가였다. 카롤 모드젤레프스키와 함께 쓴 「당에 보내는 공개서한」은 관료제가 노동계급을 지배한다고 비판하면서 노동자 평의회와 민주적 다원주의를 제안했다. 그는 1976년 노동자 방어위원회(KOR)를 공동 창립해 노동자와 지식인을 연결했고, 1980년에는 연대의 핵심 자문역으로 노동자 자주관리 노선을 밀었다. 1981년 12월 13일 계엄령 첫날 밤 구금된 뒤에도 지하 연대를 지지했으며, 1989년 이후에는 노동·사회정책 장관으로 전환기의 사회적 권리를 다뤘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76– 사회운동·조직 · 노동자방어위원회
경력 연표
- 1955–1961적색 스카우트 운동 공동조직자·월터 대원대 지휘관
- 1965–1967「당에 보내는 공개서한」 공동 저자, 정치범
- 1968–19713월 학생 시위 조직자, 정치범
- 1976–1977노동자 방어위원회(KOR) 공동 창립자
- 1980–1981독립자치노조 연대 전국위원회 자문역
- 1981–1984계엄령 수감자, KOR 재판 피고인
- 1989–1991노동·사회정책 장관
- 1992–1993노동·사회정책 장관
- 1989–2001폴란드 하원의원
관련 역사 사건
노동·사회정책 장관과 충격요법의 사회적 비용 (1989–1993)
1989년 9월 13일 쿠론은 타데우시 마조비에츠키 내각의 노동·사회정책 장관이 되었다. 당시 일부 신문은 충격요법의 시행과 사회적 갈등 때문에 이 직을 어려운 자리로 보았고, 그가 이를 수락한 것을 의외로 여겼다. 장관으로서 그의 임무는 무엇보다 충격요법의 여파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그는 고물가 속에서 혼란한 연금 체계를 물려받아 예산 자금을 최대한 끌어다 연금을 지급해야 했고, 예상 물가상승률을 미리 반영해 연금을 선제적으로 올리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실제 물가상승률이 예상을 밑돌면서 재정 파탄이 났고 일부 연금이 현직 임금보다 높아지는 결과가 나왔다. 실업급여법도 그가 도입해 '쿠로니우프카'라 불렸는데, 실업자에게 사실상 전원에게 급여가 지급되면서 수십만 명이 곧바로 신청해 재정 부담이 컸다. 1990년 5월 슈웁스크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번진 철도 노동자들의 무단 파업에 대해서는, 노동자 요구를 수용하면 경제 개혁이 위태로워지고 추가 파업을 부추긴다며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992년 7월 11일 한나 수호츠카 내각에서 다시 장관이 된 그는 1992~1993년 파업 국면에서 주요 노동조합들과의 협상 주역을 맡았고, 노동자 보장을 담은 '사회 협약'을 제안했다. 그의 두 번째 임기 핵심은 국영기업 협약이었다. 그는 1992년 여름 파업 물결에 대한 직접적 대응으로 이 안을 내놓았는데, 국영기업의 노동자와 사무직이 자기 회사의 운명과 개혁을 함께 결정하고 임금 상한을 두고 중앙 교섭을 하자는 것이 골자였다. 개혁이 사회 '위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신념, 그리고 자격 없는 인사에게 이권 자리를 배분하려는 정당들의 국가 '포획'을 막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정부·노조·사용자 간 협상은 1992년 여름부터 1993년 3월까지 이어졌으나 수호츠카 연정 내부의 분쟁으로 지연되었고, 1993년 2월에 서명되었으나 하원 비준을 앞두고 5월 의회 해산과 10월 정권 교체로 폐기되었다. 다만 그 안에서 정부·OPZZ·신규 민영화 기업 경영진 간 사회적 대화 기구인 3자위원회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