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의 '소비에트 101'을 편성한 NSC 소련 전문가이자 소련 주재 마지막 미국 대사
매트록은 회고했다. "나는 로널드 레이건보다 더 나은 학생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는 자기가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알았고,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잭 매트록은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러시아에 매료되어 외교관이 된 미국의 대소 전문가로, 1961년 첫 모스크바 근무 시절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와 흐루쇼프 사이의 외교문을 번역했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NSC 유럽·소련 담당 선임국장으로서 CIA와 국무부 분석관들을 동원해 '소비에트 101'이라는 24편의 브리핑 문건을 편성하고 모의 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 역을 맡아 레이건을 훈련시켰다. 1987년 소련 주재 대사로 부임하여 소련의 마지막 4년을 목격했고, 은퇴 후 고르바초프가 제네바에서 SDI 공유 약속을 서면화하지 않은 것을 '전략적 실수'라고 평가했다.
경력 연표
- 1929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 출생, 듀크대·컬럼비아대 수학
- 1956–1971외교관 임관, 빈·모스크바·서아프리카·동아프리카 근무, 쿠바 미사일 위기 시 케네디-흐루쇼프 서신 번역
- 1971–1974국무부 소련 담당 국장
- 1974–1978주소 미국대사관 공사 겸 부대사
- 1981–1983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미국 대사
- 1983–1986NSC 유럽·소련 담당 선임국장, '소비에트 101' 편성, 제네바·레이캬비크 정상회담 준비
- 1987–1991소련 주재 미국 대사, 소련 마지막 4년 목격
- 1991–컬럼비아대·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 『제국의 부검』·『레이건과 고르바초프』 저술
관련 역사 사건
NATO 확장 반대와 탈냉전 외교 비판
매트록은 1991년 외교관에서 은퇴한 뒤 미국 외교정책의 가장 일관된 비판자 중 한 명이 되었다. 1997년 6월, 그는 조지 케넌, 폴 니츠 등 냉전 종식을 이끈 중진들과 함께 클린턴 대통령에게 NATO 확장 반대 공개서한에 서명했고,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이는 냉전 종식 이후 가장 심각한 전략적 실수가 될 것"이라고 증언했다. 매트록은 NATO 확장이 러시아 내 반민주 세력을 강화하고, 핵무기 감축 조약 비준을 저해하며, 유럽에 새로운 분할선을 그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0년 저서 『초강대국의 환상』에서 매트록은 미국이 냉전을 '승리'했다는 신화, NATO 확장의 정당화 논리,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으로 이어진 일방주의 외교가 어떻게 미국의 국력을 소진시켰는지를 분석했다. 그는 소련 붕괴가 미국의 군사적 압박이 아니라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외교적 협상의 산물이며, 클린턴 이후 NATO가 러시아 국경까지 확장된 것은 러시아와의 신뢰 구축 기회를 낭비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2021~2022년 우크라이나 위기 당시 90대의 매트록은 다시금 NATO 확장의 귀결을 지적하며,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피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그는 푸틴의 침공을 정당화하지는 않았으나, 서방이 고르바초프에게 약속했다고 주장하는 NATO 불확장 약속의 파기가 위기의 근본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2022년 2월, 매트록은 이 위기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보다 핵전쟁에 더 가까운 순간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