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니콜라 비요바렌

Jacques-Nicolas Billaud-Varenne

공안위원회에서 공포정치의 중앙집권 법령을 이끌고 테르미도르 뒤 기아나로 유배된 산악파 의원

1756년 라로셸에서 태어나 파리 고등법원 변호사가 되었고, 1789년 초 대신들의 전제를 비판하는 책을 냈다. 1790년부터 자코뱅 클럽에서 가장 격렬한 반왕정 연설가로 이름을 얻었고, 바렌 도주 뒤 공화정을 요구했다. 파리 선출 국민공회 의원으로서 루이 16세의 처형에 찬성했고, 1793년 9월 콜로 데르부아와 함께 공안위원회에 들어갔다. 같은 해 12월 위원회에 권한을 모은 프리메르 14일 법을 제안해 공포정치의 행정 틀을 세웠다. 1794년 로베스피에르와 갈라서 테르미도르 9일 그를 무너뜨리는 데 앞장섰으나, 1795년 재판 없이 프랑스령 기아나로 유배되었다. 통령정부의 사면을 거절했고, 1816년 아이티로 건너가 1819년 포르토프랭스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