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리 콜로 데르부아

Jean-Marie Collot d'Herbois
프랑스 제1공화국 국가기관 자코뱅·프랑스 혁명 급진파 프랑스 프랑스 1749–1796 ○ 유형지에서 황열병으로 사망

배우 출신으로 공안위원회에 들어가 리옹 진압을 지휘한 산악파 의원

1749년 파리에서 태어나 배우·극작가로 지방 극장을 떠돌다 1787년 리옹 극장을 맡았다. 혁명이 일어나자 파리로 돌아와 자코뱅 클럽에서 활동했고, 1791년 『제라르 영감의 연감』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1792년 8월 10일 봉기 때 파리 코뮌에 참여했고, 국민공회 첫 회의에서 왕정 폐지를 맨 먼저 요구했으며 루이 16세의 즉각 처형에 찬성했다. 1793년 9월 비요바렌과 함께 공안위원회에 들어갔고, 그해 10월 말 푸셰와 함께 리옹으로 파견되어 반란을 일으킨 도시에서 대량 처형을 지휘했다. 1794년 테르미도르 9일 로베스피에르 타도에 가담했으나, 1795년 바레르·비요바렌과 함께 프랑스령 기아나 유배형을 받았고 1796년 그곳에서 황열병으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