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출신으로 공안위원회에 들어가 리옹 진압을 지휘한 산악파 의원
1749년 파리에서 태어나 배우·극작가로 지방 극장을 떠돌다 1787년 리옹 극장을 맡았다. 혁명이 일어나자 파리로 돌아와 자코뱅 클럽에서 활동했고, 1791년 『제라르 영감의 연감』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1792년 8월 10일 봉기 때 파리 코뮌에 참여했고, 국민공회 첫 회의에서 왕정 폐지를 맨 먼저 요구했으며 루이 16세의 즉각 처형에 찬성했다. 1793년 9월 비요바렌과 함께 공안위원회에 들어갔고, 그해 10월 말 푸셰와 함께 리옹으로 파견되어 반란을 일으킨 도시에서 대량 처형을 지휘했다. 1794년 테르미도르 9일 로베스피에르 타도에 가담했으나, 1795년 바레르·비요바렌과 함께 프랑스령 기아나 유배형을 받았고 1796년 그곳에서 황열병으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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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1794
정부·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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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1794
프랑스 제1공화국 국가기관공안위원회 위원프랑스 국가원수 · 정부 수반대표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787리옹 극장 감독
- 1791『제라르 영감의 연감』 출간
- 1792파리 코뮌 참여, 파리 선출 국민공회 의원
- 1793.09.06–1794.09.01공안위원회 위원
- 1793.10.30푸셰와 함께 리옹 반란 진압에 파견
- 1795프랑스령 기아나 유배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