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트로츠키의 비판문을 읽고 미국 트로츠키즘 운동을 창건한 노동운동가
“그들은 자기 당의 심장을 추방한 셈이었다. 트로츠키가 진지한 젊은 활동가들을 모두 자기편으로 만들었고, 빈 껍데기만 남았다.” — 1937년 사회당이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축출한 뒤
캔자스 출신의 아일랜드계 노동운동가로, 1919년 미국 공산당 창립에 참여하고 1922년 코민테른 상임간부회에 올랐다. 1928년 모스크바에서 트로츠키의 코민테른 비판문을 접하고 좌익반대파로 전환, 공산당에서 제명된 후 미국 공산주의자동맹을 창립했다. 1934년 미니애폴리스 트럭 운전사 총파업을 성공적으로 지도했고, 1938년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을 창당하여 초대 전국서기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반대 활동으로 스미스법에 따라 18개월간 수감되었으며, 제4인터내셔널의 핵심 지도자로서 국제 트로츠키즘 운동을 이끌었다.
경력 연표
- 1908미국 사회당(SPA) 입당
- 1911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 가입, 중서부 조직가로 활동
- 1919미국 공산노동당(CLP) 창립 참여, 캔자스·미주리·네브래스카 지역서기
- 1922코민테른 제4차 세계대회 미국 대표, ECCI 상임간부회 선출
- 1925국제노동방위(ILD) 창립, 초대 전국서기
- 1928트로츠키주의 전향으로 CPA 제명; 미국 공산주의자동맹(CLA) 공동 창립
- 1934미니애폴리스 트럭 운전사 총파업 지도
- 1938사회주의노동자당(SWP) 창당, 초대 전국서기 선출
- 1944–1945스미스법 위반으로 18개월 수감
- 1953–1974전국서기직 사임 후 명예 전국의장;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망
1928년 모스크바: 우연한 전향
1928년 여름, 제임스 P. 캐넌은 코민테른 제6차 세계대회 미국 대표로 모스크바에 파견되었다. 당시 코민테른은 이미 스탈린주의 관료들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고, 레온 트로츠키는 당에서 축출되어 내부 추방 상태였다. 트로츠키는 대회에 앞서 「코민테른 강령 초안 비판」을 작성했으나, 스탈린 진영은 이 문건을 철저히 은폐했다. 그런데 실무상의 실수로 번역본 한 부가 잘못 유통되었고, 캐넌은 우연히 이를 입수하게 되었다.
캐넌은 이미 코민테른의 우경화 노선에 회의를 품고 있던 터였다. 트로츠키의 비판문은 그에게 계시와도 같았다. 캐넌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코커스 회의도, 본회의도 제쳐두고 이 문건을 연구했다." 캐나다 대표 모리스 스펙터 또한 같은 결론에 도달했고, 두 사람은 트로츠키의 노선을 위해 싸우기로 결의했다. 대회가 끝난 뒤 캐넌은 이 문건을 미국으로 밀반입했다. 출판할 자금조차 없어 손에서 손으로 돌려가며 당원들에게 전달해야 했지만, 이것이 미국 트로츠키즘 운동의 기원이 되었다.
귀국 직후 캐넌은 미국 공산당 내에서 좌익반대파 조직을 시도했고, 1928년 10월 막스 샤흐트만, 마틴 애번 등과 함께 제명되었다. 캐넌은 훗날 "그들은 자기 당의 심장을 추방한 셈이었다"고 말했지만, 이 순간 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소수의 신념만으로 시작된 이 작은 분파는 10년 뒤 사회주의노동자당(SWP)으로 성장하여 미국 혁명적 좌파의 가장 일관된 흐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