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노시 카다르

Kádár János
헝가리 헝가리 1912–1989 ○ 자연사

구야시 코뮤니즘의 설계자, 32년의 온정적 실용주의자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 편이다」(1961년)

피우메에서 하녀의 사생아로 태어나 14세에 인쇄소 견습공이 되었고, 16세 체스 대회 우승 상품인 엥겔스 『반뒤링론』이 마르크스주의로 이끌었다. 1931년 불법 공산당 입당 후 지하운동·투옥·레지스탕스를 겪었고, 전후 내무장관이었으나 라코시에게 '티토주의자'로 몰려 3년간 수감되었다. 1956년 혁명 진압 후 집권했지만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 편'이라는 노선으로 전환해 대사면·경제개혁·관광개방을 추진, 헝가리를 동구권 최고 소비사회로 만들었다. 소련 영웅 칭호를 받은 몇 안 되는 동구권 지도자로서, 그의 32년 통치는 사회주의권 최대 자유화 실험이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신경제메커니즘(1968): 동구권 최대의 경제개혁 실험

카다르 체제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1968년 1월 1일 발효된 '신경제메커니즘'이다. 레죄 니에르시(Rezső Nyers)가 실무를 주도한 이 개혁은 중앙의 의무적 계획 지표를 폐지하고 기업에 생산·가격·투자 결정권을 대폭 이양했다. 카다르는 정치국과 각료회의가 '요나단 사과부터 버스 차축까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국영기업들은 재정 자립을 얻었고 자체 지점을 열어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가공업 부문에서는 상대적 가격 자유화가 이루어졌다. 임금 평준화를 억제해 노동 유인을 보존했고, 1970년대 중반 포린트는 거의 완전 태환에 도달했다. 그 결과 헝가리는 1인당 밀·육류 생산 유럽 1위, 계란 생산 2위를 기록했고 소비재 부족이 거의 없는 동구권 유일의 국가가 되었다. 개혁은 1972년 브레즈네프의 압력과 1973년 석유파동으로 후퇴했으나, 그 골격은 1980년대까지 유지되어 헝가리의 체제전환을 동구권에서 가장 평화롭게 만들었다. 카다르는 서방 기자들에게 이것이 '사회주의적 시장 방법'일 뿐이라고 거듭 강조했으며, 자신의 개혁이 사회주의 틀 안에 머문다는 점을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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