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티유를 친 생탕투안 출신 금세공 노동자로 방데에서 서부군을 지휘한 상퀼로트 장군
1759년 파리 생탕투안 문밖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금세공 노동자로, 1789년 바스티유 습격과 1792년 8월 10일 봉기에 가담해 봉기 코뮌 총평의회에 들어갔다. 1793년 헌병 중령으로 방데에 가서 롱생의 비호로 7월 라로셸 연안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약탈과 무능으로 8월 해임되었으나 국민공회가 복직시켰고, 9월 로베스피에르와 에베르가 자코뱅 클럽에서 그를 변호했다. 11월 서부군과 브레스트·셰르부르 연안군까지 맡았으나 돌의 패배 뒤 밀려났다. 1794년 4월 해임되고 테르미도르 뒤 투옥되었으며, 바뵈프의 평등파 음모에 연루되었다가 무죄로 풀려났다. 1801년 자코뱅들과 함께 유배되어 1802년 코모로의 앙주안섬에서 병사했다.
다른 이름: 장 앙투안 로시뇰
주요 활동과 소속
- 1793–1794 군사·지휘 · 프랑스 제1공화국 국가기관
- 1792 사회운동·조직 · 파리 코뮌 (1789–1795)
- 1775–1783 군사·지휘 · 프랑스 왕정 국가기관
경력 연표
- 1775–1783루아얄루시용 연대 병사
- 1789바스티유 습격 참가
- 17928월 10일 봉기, 봉기 코뮌 총평의회 위원
- 1793라로셸 연안군 총사령관
- 1793브레스트 연안군·서부군·셰르부르 연안군 사령관
- 1796–1797평등파 음모 연루로 투옥, 무죄
- 1801–1802세이셸·코모로 유배, 앙주안섬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