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에 엄격하고 동맹에 관대했던 파리 경찰청장, 그 해임이 2월 6일의 도화선이 되다
「그렇다면 나는 거리에 있게 되겠군요」, 해임을 통보하는 달라디에와의 전화에서, 1934년 2월 3일. 우파 신문은 이 말을 거리로 나가겠다는 예고로 읽었고, 시아프는 실직을 뜻했을 뿐이라고 했다
코르시카 아자시오 출신의 경찰 관료로 1927년부터 1934년까지 파리 경찰청장을 지냈다. 좌파 시위에는 엄격하고 극우 동맹의 가두 행동에는 관대하다는 평이 따라다녔으며, 우파 신문과 참전군인 조직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1934년 2월 3일 에두아르 달라디에 총리가 그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자 우파는 공화국이 자기 편 경찰을 쳐낸 사건으로 받아들였고, 사흘 뒤 콩코르드 광장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해임된 뒤에도 파리에서 우파 정치의 중심 인물로 남았고, 1940년 비시 정권이 레반트 고등판무관으로 임명해 부임하던 길에 지중해 상공에서 비행기가 격추되어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78코르시카 아자시오에서 출생
- 1900년대–1926경찰 행정의 요직을 거치며 승진
- 1927–1934파리 경찰청장
- 1934.02.03달라디에가 해임, 모로코 총감 제안을 거부
- 1935–1940파리 우파 정치의 중심 인물로 남음
- 1940.11비시의 레반트 고등판무관 임명, 부임 길에 격추되어 사망
관련 역사 사건
해임 이후의 정치 경력과 비시 체제로의 전환
1934년 2월 3일 파리 경찰청장 자리에서 해임된 뒤에도 시아프는 프랑스 우파 정치의 중심에 남았다. 1935년 6월 24일에는 파리 시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1936년 총선에서는 아자시오 선거구의 당선이 무효가 되었으나 센주 의원으로 당선되어 보수 성향의 공화파 무소속 원내 교섭단체에 합류했다. 경찰청장 시절 좌파 시위를 탄압하고 앙드레 타르디외, 샤를 모라스의 앙시옹 프랑세즈, 왕당파 카멜로 뒤 루아 등과 가까이 지낸 이력은 그가 의회 무대로 옮겨간 뒤에도 우파 진영에서의 영향력을 뒷받침했다.
1940년 7월 10일 필리프 페탱에게 전권을 넘기는 투표에서 시아프는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 25일 페탱은 그를 가브리엘 퓌오의 후임으로 레반트 주재 프랑스 고등판무관에 임명했고, 시아프는 11월 27일 베이루트의 새 직무를 향해 마르세유-마리냥을 출발했다. 그가 탄 에어프랑스의 포르만 사발기(조종사 앙리 기요메, 마르셀 렌)는 사르데냐 인근 지중해 상공에서 이탈리아와 영국 함대의 교전에 휘말려 기총 사격을 받고 격추되었으며, 시아프와 비서실장을 비롯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이 격추가 누구의 사격에 의한 것인지는 확정되지 않았고, 영국 측 격추설도 당시 제기되었다. 시신은 발견되지 않아 그는 지중해에서 실종된 것으로 처리되었고, 그가 부임하려 했던 자리는 결과적으로 비시 체제의 레반트 정책을 이어받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