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롱게

Jean Longuet

마르크스의 외손자, 전시 프랑스 사회당 소수파와 투르 대회 「중앙」의 지도자

프랑스의 사회주의 정치가·언론인. 마르크스의 딸 예니의 아들로 런던에서 태어났다. 1905년 통합 사회당에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라는 이름을 붙였고, 제1차 세계대전 중 평화를 주장하면서도 전쟁공채에는 찬성한 소수파를 이끌며 1917년 《르 포퓔레르》를 창간했다. 1920년 투르 대회에서 코민테른 가입에는 찬성했으나 21개 조건을 거부해 소수파에 남았고, 이른바 「2½ 인터내셔널」에 참여했다. 1938년 교통사고로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전시 소수파에서 투르 대회까지

롱게는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마르크스와 이모 엘리너 마르크스의 사랑을 받았고, 엘리너는 그의 정치적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처음 쥘 게드의 프랑스노동자당에 들어갔으나, 드레퓌스 사건을 「노동계급과 무관한 부르주아의 사건」으로 본 게드에 반대해 장 조레스 쪽으로 기울었다. 1905년 게드파와 조레스파가 합칠 때 새 당에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이 그였다. 그는 영어·독일어·이탈리아어에 능해 《뤼마니테》에서 국제 문제를 맡았고, 카우츠키의 《새 시대》에도 글을 썼다.

1914년 7월 31일 조레스가 암살될 때 그는 그 자리에 있었고, 장례 직후 국방 정책에 합류했다. 전쟁 중 그는 평화를 주장하면서도 군사 예산에는 계속 찬성한 소수파를 이끌었고, 이 흐름은 점점 힘을 얻어 1917년 일간지 《르 포퓔레르》를 낼 수 있게 되었으며 1918년 당의 다수가 되었다. 1919년 9월 18일 그는 하원에서 베르사유 조약 비준에 반대하는 사회당의 입장을 밝히며 식민지 민중과의 연대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1920년 12월 투르 대회에서 그는 코민테른 가입에는 찬성하면서도 레닌이 정한 21개 조건은 받아들이지 않고 당의 통일을 지키려 했다. 그는 당을 공산당으로 바꾸려는 다수파와 레옹 블룸이 이끈 우파 「재건파」 사이의 「중앙」에 섰다. 그러나 대회 사흘째 도착한 「지노비예프 전보」가 그를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부르주아 영향력의 확고한 대리인」이라 부르며 모든 온건파를 규탄하라고 요구했고, 분개한 그는 사회당이라는 「옛 집」에 남았다. 이후 그는 빈 연합(이른바 「2½ 인터내셔널」)에 참여했고, 1923년 노동자사회주의인터내셔널 집행위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