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피에르 부아예

Jean-Pierre Boyer
민족해방·반식민 운동 아이티 아이티 1776–1850 → 망명지에서 사망

아이티를 다시 통일하고 이스파니올라섬 전체를 다스렸으며 프랑스에 독립 배상금을 약속한 대통령

1776년 포르토프랭스에서 프랑스인 재단사와 콩고 출신의 해방 노예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프랑스에서 교육받았다. 1793년 민사위원 편에서 대농장주·왕당파와 싸웠고, 남부 전쟁에서 리고 편에 섰다가 리고·페티옹과 함께 프랑스로 달아났다. 1802년 르클레르 원정군과 돌아왔으나 프랑스가 노예제를 되살리려 하자 페티옹·데살린의 반란군에 합류했다. 1818년 페티옹의 지명으로 아이티 공화국 대통령이 되어, 1820년 크리스토프가 자살하자 싸우지 않고 나라를 통일했고 1822년 2월 산토도밍고를 병합해 섬 전체를 다스렸다. 1825년 독립 승인의 대가로 프랑스에 1억 5천만 프랑의 배상을 약속해 아이티 재정을 짓눌렀다. 1843년 봉기로 쫓겨나 1850년 파리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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