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딩 군관학교 교장을 지낸 안후이파 장군, 3·18 참사 때의 국무총리
1880년 안후이 허페이에서 태어나 바오딩 육군속성학당과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귀국 뒤 북양군 장교로 여단장과 산시 남부 진수사를 지냈고, 위안스카이가 죽은 뒤 돤치루이의 안후이파에 들어갔다. 1919년 바오딩 육군군관학교 교장이 되었고, 1924년 베이징 정변 뒤 돤치루이 임시집정부의 육군총장이 되었다. 1926년 2월 쉬스잉의 뒤를 이어 국무총리가 되었으나, 3월 18일 집정부 앞에서 시위대가 학살된 3·18 참사 뒤 사직을 청했고 4월 돤치루이와 함께 물러나 톈진으로 갔다. 중일전쟁 중 일본 점령지에 머물렀으나 친일 정부 참여를 거절했고, 1941년 상하이에서 병으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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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1922
북양정부·군벌바오딩 육군군관학교 교장
군사·지휘 -
1924–1926
북양정부·군벌육군총장
군사·지휘 -
1926
북양정부·군벌국무총리중국 국가원수 · 정부 수반 · 당 지도자대표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913육군 제7사 제13여단장
- 1916.01산시 남부 진수사
- 1919.08바오딩 육군군관학교 교장
- 1922육군부 군학사 사장
- 1924.12–1926육군총장
- 1926.03.04–04.20국무총리
- 1935.12지차 정무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