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오쭝

江朝宗
북양정부·군벌 왕정·왕당파 중국 중국 1861–1943 ○ 노환으로 사망

총리 대리로 국회를 해산하고 장쉰의 복벽에 가담했다가 일본 점령기 베이징 시장이 된 장군

안후이 출신으로 젊어서 타이완에서 일하다 부패 혐의로 1889년 본토로 돌아왔고, 이후 위안스카이 밑으로 들어가 그의 측근이 되었으며 1915년 위안의 황제 즉위 준비 위원회에 참여했다. 1913년부터 베이징 보군통령을 지냈고, 1917년 6월 우팅팡이 국회 해산령 부서를 거부하자 국무총리 대리로 임명되어 해산령에 서명했다. 7월 1일 장쉰의 청 복벽에 왕스전 등과 함께 가담했고, 복벽이 실패한 뒤 보군통령에서 해임되었다.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 뒤 일본군의 요청으로 베이징 임시 시장을 맡고 중화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으며, 왕징웨이 정권 아래 화북정무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국민당 정부에 매국노로 규정된 채 1943년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