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애딩턴 시먼즈

John Addington Symonds
독립 활동 영국 영국 1840–1893 ○ 사망

해블록 엘리스와 『성적 도착』을 함께 쓴 르네상스 연구자·시인

1873년 『그리스 윤리의 한 문제』를 써 「그리스적 사랑」을 옹호했고, 그가 엘리스와 함께 쓴 『성적 도착』은 1897년 영어로 나온 첫 동성애 의학서가 되었다.

브리스틀의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베일리얼 칼리지를 나온 영국의 시인·비평가·문화사가. 일곱 권짜리 『이탈리아의 르네상스』(1875~1886)로 이름을 얻었고, 건강 때문에 1877년부터 스위스 다보스에 살았다. 결혼해 네 딸을 두었지만 남성 간 사랑을 지지했고, 1873년 『그리스 윤리의 한 문제』로 그리스적 사랑을 옹호했다. 해블록 엘리스와 함께 쓴 『성적 도착』은 1897년 영어판으로 나와 첫 동성애 의학서가 되었다. 1893년 로마에서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관련 역사 사건

「그리스적 사랑」과 『성적 도착』

해로 스쿨 시절인 1858년 그는 친구에게서 교장 찰스 본과의 관계를 털어놓는 편지를 받고 충격을 받았지만, 그 자신도 동성애를 자각해 가고 있었다. 옥스퍼드의 라틴어 교수 존 코닝턴은 남성과 소년의 낭만적 관계를 긍정하며 윌리엄 존슨 코리의 동성애적 시집을 건넸고, 그의 권유로 이 일을 아버지에게 알려 본은 해로를 떠나야 했다. 1864년 재닛 캐서린 노스와 결혼해 네 딸을 두었으나, 1868년 클리프턴에서 제자가 된 청년 노먼 무어와 4년 동안 관계를 이어 가며 가장 많은 시를 썼다.

1873년 그는 훗날 「게이 역사」라 불릴 『그리스 윤리의 한 문제』를 썼다. 월트 휘트먼의 시에 영감을 받아 쓴 이 「그리스적 사랑에 대한 가장 철저한 찬사」는 10년 동안 묻혀 있다가 소수만 돌려 보는 한정판으로 나왔고, 그는 여기서 영어사전이 1892년의 첫 용례로 꼽는 「동성애자」라는 말을 이미 썼다. 「다윗과 요나단의 만남」(1878) 같은 시와, 앞선 편집자들이 여성형으로 바꿔 놓은 미켈란젤로의 소네트를 남성형으로 되돌린 번역으로 영문학에 남성 간 사랑을 처음 직접 드러냈다. 1891년에는 독일의 카를 하인리히 울리히스를 찾아가려 했다.

해블록 엘리스와 함께 쓴 『성적 도착』은 1896년 독일어로, 이듬해 영어로 나와 영어로 된 첫 동성애 의학서가 되었다. 이 책은 동성애를 병이나 부도덕, 범죄로 보지 않았지만, 시먼즈의 유산 집행인이 초판을 사들이고 둘째 판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게 했다. 그는 1893년 로마에서 숨져 셸리의 무덤 곁에 묻혔다. 1889~1893년 쓴 회고록은 알려진 가장 이른 게이 자서전으로 꼽히지만, 1926년 에드먼드 고스가 회고록을 뺀 그의 문서를 모두 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