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고트

John Vereker
영국 국가기관 영국 영국계 아일랜드인 1886–1946 ○ 자연사

됭케르크에서 철수를 택한 야전 원수

“여기 다시 간다, 전쟁을 향해 행진한다.”

존 고트는 제1차 세계대전의 용맹성과 제2차 세계대전의 지휘 판단이 함께 기억되는 영국 육군 원수였다. 1918년 됭노르 운하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도 공격을 이끈 공로로 빅토리아 십자장을 받았다. 프랑스 주둔 영국 원정군 사령관으로서 1940년 독일군의 포위와 대륙 방어선의 붕괴를 판단해 됭케르크 철수를 명령했고, 이 선택은 병력을 보존했지만 그의 야전 지휘 능력에 대한 논쟁을 남겼다. 이후 몰타 총독으로 포위된 섬의 방어를 지휘하며 명성을 회복했다.

다른 이름: 고트 경 · 존 베레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제국참모총장 시절, 1937–1939

고트는 1937년 12월 6일, 레슬리 호어-벨리샤 전쟁장관이 고위 장교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육군평의회에 임명되어 대장 계급과 함께 제국참모총장 자리를 맡았다. 시릴 데버럴 원수를 대신한 이 인사는 육군 안에서 대체로 환영받았지만, 존 딜, 아치볼드 웨이벌, 앨런 브룩 등 그보다 연장자이고 선임이던 장교들을 제친 데 대한 불만도 낳았다. 브룩은 훗날 고트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인물이 되었다. 고트는 지능 면에서 그다지 높이 평가되지 않았고, 그래서 로널드 애덤 소장이 제국참모총장 차장으로 임명되었다.

고트가 총장으로 재임한 시기는 재무장과 대륙 파병 계획이 맞물린 시기였다. 1938년 12월 2일 그는 영국 육군의 전투준비태세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해, 체코슬로바키아 합병으로 나치 독일의 위치가 한 해 전보다 강화되었고 1937년 정부가 '범용' 육군을 만들기로 한 결정 때문에 영국에는 프랑스 방어에 필요한 병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달 21일에는 참모총장들에게 영국이 프랑스의 네덜란드·벨기에 방어를 도와야 하며, 이를 위해 4개 정규 보병사단과 2개 기동 기갑사단의 완전한 장비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해군참모총장 로저 백하우스 제독은 그러한 약속이 막대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응수했다. 고트는 해군력을 통한 전략적 기동성이라는 이론도 오류라고 공격했는데, 현대전에서는 육상 수송이 해상 수송보다 빠르고 저렴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순수 방어 태세를 취하면 마지노 선이 뚫릴 것이라고 보았고, 방위비 총액 20억 파운드 가운데 육군(대공방어 포함)에 돌아가는 몫은 2억 7700만 파운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시기 고트의 위상은 양가적이었다. 호어-벨리샤는 그를 '완전히 머리가 비었고 가장 단순한 문제도 파악하지 못한다'고 평했다. 고트는 연합군의 D 계획에 대한 부하들의 비판, 곧 독일 국방군이 연합군을 우회 포위할 것이라는 앨런 브룩의 예측을 패배주의로 일축했다. 이른바 토치카 사건은 호어-벨리샤의 해임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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