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 소련 미사일이 올 것이라 홀로 경고한 CIA 국장
기습 공격은 미국에 '진주만 오명'을 남길 것이라고 경고하며, 공습 전 카스트로와 흐루쇼프에게 24시간의 사전 경고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사업가이자 공화당원으로, 피그만 침공 실패 후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CIA 국장에 임명되었다. 1962년 여름과 가을,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반입할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으나 정보기관 내부에서 기각당했고, 9월 20일 신혼여행 중 보낸 전문에서 '상상력 있는 분석'을 촉구한 끝에 10월 14일 U-2 정찰기를 명령해 미사일 기지를 발견했다. 케네디 암살 후 존슨 행정부에서도 재임했으나 베트남 확전을 둘러싼 불화로 1965년 사임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61–1965 보안·정보·치안 · 미국 국가기관
경력 연표
- 1929Consolidated Steel Corporation 수석부사장
- 1937Bechtel-McCone 공동 창업
- 1941–1945California Shipbuilding Corporation 사장
- 1950–1951미국 공군 차관
- 1958–1961미국 원자력위원회 위원장
- 1961–1965제6대 CIA 국장
관련 역사 사건
산업가에서 원자력위원장까지, 1937~1961
매콘은 공직에 들어가기 전 캘리포니아의 기술자이자 기업인이었다. 1922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기계공학 학사를 받은 뒤 로스앤젤레스의 르웰린 아이언웍스에서 건설기사로 일했고, 이 회사가 컨솔리데이티드 스틸에 흡수된 1929년에는 관리직으로 올라섰으며 1933년 부사장 겸 이사가 되었다.
1937년 그는 스티븐 베크텔과 함께 베크텔-매콘을 세우고 사장을 맡았다. 이 회사는 아메리카와 중동에서 발전소와 정유공장을 설계·건설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사업은 조선과 항공기 생산으로 확장되었고, 1941년 설립된 캘리포니아 십빌딩 코퍼레이션에서도 사장을 맡았다. 이 조선회사는 전쟁 중 10만 달러 투자로 4400만 달러를 벌어들여 의회 조사기관의 전시 이익 편취 의혹을 샀고, 그는 이를 반박했다.
전후 그는 트루먼 대통령의 항공정책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1948년 국방장관 특별보좌관, 1950~1951년 공군 차관을 역임했다. 이 시기 그는 미국의 전략 미사일 계획을 강하게 지지하는 인물로 부상했으며,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이던 아이젠하워와 전략 폭격과 나토의 핵능력을 둘러싸고 가까워졌다. 1958년에는 아이젠하워에 의해 원자력위원회(AEC) 위원장에 임명되어 1961년 1월까지 재임했다.
위원장으로서 그는 전임자 루이스 스트라우스 아래에서 경색되었던 민주당계 원자력 합동의회위원회와의 관계를 개선했고, 소련의 핵능력에 관해 위원회에 정기적으로 정보를 보고했다. 그는 아이젠하워의 대기권 핵실험 일방 중단에 개인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으며, 소련과의 핵실험 금지 조약에는 부정행위를 막을 실효적 안전조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1년 1월 민간으로 돌아갈 무렵 그의 강경하고 원칙적인 태도는 양당 국방 전문가들의 존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