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가르시아 올리베르

Juan García Oliver
스페인 전국노동연맹 아나키즘 스페인 스페인 1901–1980 ○ 망명지에서 사망

「로스 솔리다리오스」 출신으로 내전기 공화국 법무 장관이 된 아나르코생디칼리스트

레우스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웨이터로 일하다 1919년 CNT 노동조합 운동에 들어갔다. 1922년 두루티 등과 직접행동 그룹 「로스 솔리다리오스」를 만들었고, 공화국 수립 뒤 이베리아 아나키스트 연맹(FAI)에서 즉각 봉기를 주장하며 1932~33년 봉기에 앞장섰다. 1936년 7월 바르셀로나 시가전 뒤 반파시스트 민병대 중앙위원회에서 CNT를 대표해 전쟁부를 맡았고, 11월 라르고 카바예로 정부의 법무 장관이 되었다. 1937년 5월 사건 때는 CNT 노동자들에게 싸움을 멈추라고 호소했다. 내전 뒤 멕시코로 망명해 그곳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아나키스트 법무 장관 (1936~1937)

1936년 7월 바르셀로나에서 군부 봉기를 꺾은 뒤 23일 열린 지역 그룹 총회에서 가르시아 올리베르와 바이스 요브레가트 지구는 자유지상 공산주의를 선포하자고 제안했지만, 총회는 만장일치로 이를 거부했다. CNT는 권력을 쥐는 대신 자치정부와 나란히 반파시스트 민병대 중앙위원회에 들어가는 길을 택했고, 그는 이 위원회 결성을 추진한 뒤 아라곤 전선으로 가는 종대를 꾸렸다가 바르셀로나로 불려 와 CNT를 대표해 위원회의 전쟁부를 맡았다.

11월 4일 CNT는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의 전시 내각에 들어가기로 했고, 가르시아 올리베르는 법률 교육도 사법 경험도 없이 법무 장관이 되었다. 국가를 거부해 온 운동의 투사가 국가의 장관이 된 것이다. 그는 「인민 전쟁 학교」를 조직하고 정치범을 위한 노동 수용소를 세웠으며, 재판 수수료를 없애고 범죄 기록을 파기했다. 정부가 발렌시아로 옮긴 뒤 그의 법무부가 서명한 1937년 2월 4일 법령은 「성별은 민사 능력의 범위와 행사에 어떤 차이도 낳지 않는다」고 선언해 스페인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의 완전한 민사상 평등을 인정했다.

1937년 5월 바르셀로나에서 CNT가 지키던 전화국을 공화국 치안 부대가 접수하려 하면서 CNT·FAI·POUM과 정부 쪽 사이에 시가전이 벌어지자, 그는 다른 CNT 장관들과 함께 바르셀로나 노동자들에게 싸움을 그만두라고 호소했다. 파시즘에 맞선 단결과 전쟁 승리가 먼저라는 논리였다. 어떤 이들은 정부에 참여한 그를 스페인 아나키즘의 배신자로 보았고, 다른 이들은 프랑코를 꺾기 위해 그런 양보가 필요했다고 보았다. 5월 사건 뒤 라르고 카바예로 정부가 무너지면서 그는 장관직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