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파브르

Jules Favre

「한 치의 영토도」 내주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나 휴전과 프랑크푸르트 조약을 교섭해야 했던 국방정부의 외무장관

리옹에서 태어나 변호사가 되었고 1830년 혁명 때부터 공화파를 자처했다. 1851년 쿠데타 때 위고 등과 무장 저항을 조직하려 했다. 1858년 파리에서 당선되어 제정에 맞선 공화파 「5인」의 하나가 되었다. 1870년 티에르와 함께 전쟁에 반대했고 스당 뒤 황제의 폐위를 요구했다. 국방정부 부수반 겸 외무장관으로 9월 6일 「영토의 한 치도, 요새의 돌 하나도」 내주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나 페리에르에서 비스마르크의 알자스-로렌 요구를 들었다. 1871년 1월 28일 휴전을 맺고 동부군이 제외된 것을 알리지 않아 그 군대는 스위스로 넘어가야 했다. 프랑크푸르트 조약 뒤 1871년 8월 물러났고, 1876년 상원의원이 되어 1880년 죽었다.

다른 이름: 쥘 클로드 가브리엘 파브르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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