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유대주의 선동지 「데어 슈튀르머」를 창간하고 프랑켄 대관구장을 지낸 나치 선전가
바이에른 플라인하우젠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철십자 훈장을 받고 장교로 진급했다. 1922년 10월 히틀러가 참석한 가운데 뉘른베르크에 나치당 지부를 세웠고, 1923년 5월 반유대주의 선동지 「데어 슈튀르머」를 창간해 나치 선전의 핵심 매체로 키우며 큰 부자가 되었다. 1925년부터 미텔프랑켄(뒤의 프랑켄) 대관구장이었고 바이에른 주의회와 제국의회 의원을 지냈다. 1940년 당 최고법정에서 지도자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아 당직을 잃었으나 신문 발행은 계속했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유대인 학살을 알면서도 선동을 계속한 죄가 인정되어, 집단학살 선동으로 처벌받은 첫 나치 인물로 1946년 교수형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