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예프의 후계자였으나 위기 앞에서 무너진 아제르바이잔 당 서기
나고르노카라바흐와 숨가이트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관련하여, 나는 도덕적으로 공화국 당 조직을 이끌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1982~1988)로, 헤이다르 알리예프가 모스크바로 승진한 후 그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개인적으로 청렴했으나 정치적으로 무기력한 지도자였으며, 1988년 2월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 소비에트의 아르메니아 이관 결의와 숨가이트 포그롬이 잇따르자 사태를 수습하지 못했다. 고르바초프의 불신 속에 5월 사임하면서 '도덕적으로 공화국 당 조직을 이끌 자격이 없다'고 말했고, 이후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82–1988 정치·당 지도 · 소련
경력 연표
- 1949바쿠 가스 사무소 정비공
- 1957아제르바이잔 공과대학 졸업, 조교·전임강사·건축학부 부학장
- 1968–1971아제르바이잔 SSR 각료회의 건설·공공주택부 부부장
- 1971–1974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중앙위원회 건설·도시경제부장
- 1974–1978숨가이트 시당위원회 제1서기
- 1978–1982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
- 1982–1988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
- 1990–1992아제르바이잔 국가산업안전·광산감독위원회 의장
관련 역사 사건
1988년 이후: 은퇴와 산업안전위원회 의장직(1990~1992)
바기로프는 1988년 5월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곧바로 공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러시아어 사료에 따르면 그는 1990년 4월 9일부터 1992년 12월 24일까지 아제르바이잔 국가산업안전·광산감독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아제르바이잔어 사료도 그가 1990년 이 위원회 의장에 임명되어 한동안 재직했다고 전하며, 직에서 물러난 뒤 모스크바에 3칸짜리 아파트와 전연방급 연금 수급 자격을 받았다고 덧붙인다. 이 시기 그의 활동은 건설·산업 행정 기술자로서의 이력으로 돌아간 것이었고, 1988년 나고르노카라바흐와 숨가이트 사태를 둘러싼 정치적 책임에서 그를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1992년 말 이 직에서 물러난 뒤에야 공적 활동에서 완전히 손을 떼었고, 2000년 10월 25일 바쿠에서 67세로 사망해 제2명예묘지에 안장되었다. 이 대목은 그를 1988년 이후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난 인물로만 그리는 서술을 사실에 맞게 보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