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일리치 엘리아스베르크

Карл Ильич Элиасберг
소련 러시아계 1907–1978 ○ 자연사

봉쇄 속에서 오케스트라를 다시 세운 지휘자

1942년 8월 9일, 엘리아스베르크가 굶주림 속에서 재편한 오케스트라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을 레닌그라드에 울려 퍼뜨렸다.

카를 엘리아스베르크는 바이올린 연주에서 출발해 레닌그라드 라디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 소련 음악가였다. 레닌그라드 봉쇄로 단원 대부분이 굶주림과 전선 때문에 사라지자, 그는 남은 연주자들을 찾아 모으고 군악대원까지 보충해 오케스트라를 재편했다. 1942년 8월 9일 그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의 레닌그라드 초연을 지휘했으며, 이 연주는 굶주린 도시의 문화적 지속과 방어 의지를 알리는 방송이 되었다. 전후에는 레닌그라드 중심부에서 활동할 기회가 줄어 지방 순회 지휘자로 일했지만, 봉쇄기의 작업은 그의 삶을 규정한 역사적 장면으로 남았다.

다른 이름: 칼 엘리아스베르크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봉쇄기 오케스트라 재건과 1942년 연주 준비

레닌그라드 봉쇄가 시작될 무렵 엘리아스베르크가 이끌던 레닌그라드 라디오위원회 교향악단은 도시에 남은 유일한 교향악단이었다. 당 간부부의 결정으로 1941년 12월부터 1942년 2월까지 음악 방송이 중단되었지만, 올가 베르홀츠의 증언에 따르면 그동안에도 연주는 때때로 스웨덴과 영국을 향해 송출되었다. 1942년 3월 음악 방송이 재개되자 도시 당국은 악단을 다시 세우기로 했다. 당시 극심한 영양실조로 아스토리아 호텔의 병원에 있던 엘리아스베르크는 악단 재건을 맡았고, 도시는 상대적으로 건강한 연주자들을 참호 굴착과 공장 노동에서 해제하고 일부를 전선에서 불러들였다. 연습은 난방이 끊긴 라디오의 집에서 이루어졌고, 그는 걸을 힘조차 없어 썰매에 실려 연습장에 도착했다. 1942년 3월 30일 첫 연습에는 약 40명이 모였으나 40분을 넘기지 못했다. 그래도 4월 5일 재건된 악단의 첫 연주회가 열렸고, 그 무렵 도시에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을 연주하자는 구상이 나왔다. 7월 초 악보가 항공편으로 도착했으나 남은 인원, 특히 금관악기 주자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도시 당국과 전선 사령부의 협조로 군악 연주자들이 전방에서 차출되었고, 7월 28일 첫 전체 합주가 이루어졌다. 엘리아스베르크는 굶주린 단원들에게 연주 실력뿐 아니라 상당한 정신력과 규율을 요구했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