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 독립전쟁의 총리, 뒤에 1934년 쿠데타의 독재자
점령 당일 라디오 연설에서 저항을 금하며 “나는 내 자리에 남고, 그대들도 그대들의 자리에 남으시오.”라고 했다.
1918년 11월부터 라트비아 임시정부 총리로 소비에트군, 독일계 쿠데타, 베르몬트군을 차례로 넘기고 1920년 리가 강화와 토지개혁을 이끌었다. 1934년 쿠데타로 독재를 세웠고 1940년 소련에 강제이송되어 1942년 감옥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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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1940
라트비아 국가기관총리·대통령대표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918.11라트비아 임시정부 초대 총리
- 1920리가 강화 조약과 토지개혁 주도
- 1918–1934농민연합 지도자로 총리·외무장관 여러 차례 역임
- 1934.05군과 아이스사르기 동원, 무혈 쿠데타
- 1936.04‘민족의 지도자’ 자처, 대통령 겸 총리
- 1939.10소련군 기지 배치를 허용한 상호원조조약 서명
- 1940.07소련 점령 뒤 퇴위, 7월 강제이송
- 1942크라스노보츠크 감옥에서 사망
관련 역사 사건
- 1918–1922내전과 열강의 개입라트비아 독립전쟁기의 총리1918년 11월부터 임시정부 총리로 리예파야로 밀려나고 배 위로 피신하는 위기를 넘겨 1919년 7월 리가로 돌아왔고, 베르몬트군을 격퇴한 뒤 1920년 리가 강화와 토지개혁을 이끌었다.
- 1918.11–1920.10발트 독립전쟁과 국경의 강화라트비아 독립전쟁기의 총리1918년 11월부터 임시정부 총리로 리예파야로 밀려나고 배 위로 피신하는 위기를 넘겨 1919년 7월 리가로 돌아왔고, 베르몬트군을 격퇴한 뒤 1920년 리가 강화와 토지개혁을 이끌었다.
- 1939.09–1941.06발트 3국 병합과 1941년 6월 추방라트비아 대통령저항하지 말라고 방송한 뒤 키르헨슈테인스 정부를 임명했고, 7월 대통령직에서 밀려나 소련으로 보내졌다.
혁명과 독립전쟁
1905년 혁명 뒤 미국으로 망명해 네브래스카 대학에서 농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농민연합의 지도자였다. 1918년 11월 18일 인민평의회가 독립을 선포하면서 임시정부 총리가 되었고, 붉은 군대가 리가를 점령한 1919년 1월 리예파야로 물러나 독일 향토방위군과 자유군단에 기대어 정부를 유지했다. 4월 독일계 쿠데타로 영국 함정이 보호하는 배 「사라토프」로 피신했다가 체시스 전투 뒤 7월 리가로 돌아왔고, 베르몬트군의 리가 공격을 막아 냈으며 1920년 8월 소비에트 러시아와의 리가 강화와 9월 토지개혁을 이끌었다. 1920년대 여러 차례 총리를 지냈고 1934년 5월 15일 쿠데타로 의회와 정당을 해산해 독재를 세운 뒤 1936년 대통령직까지 겸했다. 1940년 소련 점령 뒤 강제이송되어 1942년 투르크메니스탄 크라스노보츠크의 감옥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