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트와 함께 유고슬라비아 침공과 대소련 참전을 주장하고 유대인 노동봉사를 가혹하게 만든 국방장관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1904년 뫼들링 공병 사관학교를 졸업했다. 평의회 공화국이 무너진 뒤 호르티의 국민군에 들어갔다. 1938년 임레디 내각의 국방장관이 되어 1942년까지 자리를 지켰고, 참모총장 베르트와 함께 유고슬라비아 침공 전면 참여와 동부전선 참전을 강하게 주장했으며, 커셔 폭격 뒤에는 소련이 폭격했다고 단정하며 즉시 선전포고를 요구했다. 1942년 노동봉사 대대 징집의 연령 상한을 없앴고, 6월 의회에서 유대인을 인종으로 정의하겠다고 밝혔다. 1942년 9월 지나친 친독 성향 때문에 호르티에 의해 물러났다. 전후 군사법원에서 강등·제적되었고, 베네수엘라로 이주했다가 1964년 오스트리아 린츠를 방문하던 중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38–1942 정부·행정 · 헝가리
- 1919–1938 군사·지휘 · 헝가리
경력 연표
- 1904뫼들링 공병 사관학교 졸업
- 1914–1918부다페스트·트리에스테 고위 지휘관
- 1919체코슬로바키아·루마니아군과 전투, 국민군 합류
- 1938–1942국방장관
- 1945군사법원에서 강등·제적
- 1950년대–1964베네수엘라 이주, 철도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