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본토 항공전의 방공 지휘관
레이더와 보고 체계가 알려 준 표적에 맞춰 11그룹 전투기를 즉시 출격시켜 남동부 방어를 유지했다.
뉴질랜드 출신의 영국 공군 장교로, 제1차 세계대전의 포병과 전투기 조종 경험을 방공 지휘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1940년 11그룹을 지휘하며 런던과 잉글랜드 남동부의 전투기 방어를 운용했고, 레이더·보고 체계와 신속한 소규모 출격을 결합해 독일 공군의 공세에 대응했다. 그의 판단은 비행장 피해와 조종사 소모가 누적되는 조건에서 전투기 전력을 보존하면서도 남부 방공망을 유지해야 한다는 긴장 속에서 이루어졌다. 전후에는 몰타와 극동에서도 공중작전을 지휘했다.
다른 이름: 파크 공군 원수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4–1916뉴질랜드 원정군 포병 장교로 갈리폴리와 서부전선에 복무
- 1916–1918왕립비행군단과 왕립공군에서 전투기 조종사, 48비행대대 지휘
- 1938–1940전투기지휘부 선임 항공참모장교
- 1940.04–11제11그룹 항공장교 지휘관, 영국 본토 항공전의 남동부 방공 운용
- 1940–1941훈련지휘부에서 전투기 조종사와 부대 훈련 담당
- 1941–1942이집트 항공장교 지휘관
- 1942–1945몰타 방공과 지중해·중동 및 인도 공중작전 지휘
- 1946영국 공군 퇴역, 공군 원수 계급
관련 역사 사건
1940년 11그룹의 전투 운용과 지휘 교체
파크는 1940년 4월 전투기사령부 11그룹의 지휘관이 되어 영국 남동부를 방어했다. 레이더와 보고 체계로 적기 편대를 추적해 요격 전투기를 알맞은 위치에 배치하고,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독일 전투기와 폭격기를 나누어 공격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11그룹의 넓은 방어 구역에 적의 공격이 집중될 것을 예상했다. 8월 13일부터 9월 6일까지 독일 공군은 남부 비행장과 지상 시설을 거듭 공격했고, 11그룹은 공중과 지상에서 특히 큰 피해를 입었다. 9월 6일 파크는 전방 비행장 다섯 곳과 일곱 개 구역 지휘소 가운데 여섯 곳이 폭격 피해를 입어 전투 효율에 심각한 영향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8월 26일부터 9월 6일까지 영국 공군은 248대, 독일 공군은 322대를 잃었다.
이 시기 요격 전술을 둘러싸고 지휘관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다. 파크는 여러 편대를 모아 대규모 대형으로 출격시키는 ‘빅 윙’보다, 소규모 편대를 신속히 따로 투입해 적의 공격을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분산시키는 방식을 선호했다. 9월 7일 독일 공군의 주간 공격이 런던으로 옮겨 간 뒤에도 전투는 계속되었고, 9월 15일 대규모 공중전이 벌어졌다. 전투 이후 파크는 전투기사령부에서 옮겨져 훈련사령부로 갔으며, 1940년 12월 11그룹 지휘에서 물러났다.